“시민 스스로 자경단 구성해 안전 지켜”

입력 2011-02-01 00:26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14년째 살고 있는 교민 이병학(44)씨는 3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현 상황을 계엄에 비유했다. 시위대와 맞섰던 경찰이 철수하면서 최근 수일간은 무법천지를 방불했다. 그가 사는 동네 주변에서만 10여 군데서 약탈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날 아침부터 치안 공백을 군이 메워주면서 거리가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아직도 길거리 곳곳에 탱크가 오가고 통금(오후 3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지속돼 오후부턴 사실상 일상생활이 불가능합니다.”

관공서는 물론 일반 직장도 ‘휴무’가 지속되고 있다. 시민들은 만약의 약탈사태 등에 대비해 자경단을 구성해 지역 순찰을 하고 있다고 이씨는 전했다. 외국인 거주지역인 알 마디에 살고 있는 그는 자택 주변 입구에는 낮 시간에도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다. 특히 밤이 되면 이웃끼리 대여섯명씩 조를 짜서 몽둥이, 삽, 사제 권총 등으로 무장을 하고 서성이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고 전했다.

현지 국영방송도 정치 상황을 중심으로 전하는 외신들과 달리 치안 상황 및 안전 대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민들은 이처럼 일상의 안전을 스스로 지켜나가는 한편, 시간이 지나면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도 키우고 있다. 특히 1일로 예정된 100만 총궐기에 대한 기대감이 대단하다고 했다.

“초기 젊은층이 주축이 됐던 시위는 점차 중장년층과 여성층 등으로 확산되는 양상입니다. 법관 변호사 등 고위직까지 가세하고 있어요.”

튀니지 판 페이스북 혁명을 우려한 정부가 시위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최근 인터넷과 휴대전화까지 차단에 나섰지만 민주화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30년 실정과 부패에 지친 국민들은 하나같이 무바라크가 퇴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그가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상류층의 경우는 개인 재산 보호에 더 관심을 가지며 무바라크를 지지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반미구호가 있느냐는 질문엔 무슬림원리주의자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반미정서가 깔려 있지만 아직까지 일반인이 인식할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정치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에 대한 여론을 묻자 “CNN 등 미국 방송은 그를 부각시키는 것 같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그에 대한 지지는 적극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외국에서 30년을 지내 국민정서와의 교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집트 최대 야당이자 최대 종교세력인 무슬림형제단도 지난 선거를 치르면서 권력 갈등이 표면화돼 세력이 약화돼 있다고 그는 우려했다.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