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종회] 박완서, 체험과 치유의 글쓰기

입력 2011-01-31 17:36


“잔잔한 호소력으로 역사의 상처를 풀어냄으로써 시대의 질문에 대답했다”

문인들은 가난하니, 나 죽어서 찾아오는 분들을 잘 대접하고 조의금은 절대 받지 말아라. 지난달 22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 박완서 선생이 가족들에게 남긴 말이다. 불혹의 나이에 문단에 나와 꼭 40년간 현역으로 소설을 쓰고 작품 활동을 마감한 작가. 문학에 친숙한 이나 그렇지 않은 이 모두에게 어머니처럼 누나처럼 정겹고 풋풋한 정감을 남긴 작가.

작가에게는 자신의 시대가 유일한 기회이며, 시대는 작가를 위해 만들어지고 작가는 시대를 위해 만들어진다고 한 사람은 장 폴 사르트르이다. 1931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곤고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년기의 시작을 힘겨운 전쟁과 함께했으니, 한 작가를 위해 준비된 시대는 참으로 험난했다. 그런데 그 파란만장한 체험의 날들이 이윽고 한국문학의 돌올한 봉우리를 추동하는 힘이 되었으니, 중국 청대의 역사가 조익의 말 ‘국가불행시인행(國家不幸詩人幸)’은 박완서 선생에게서 유익한 범례를 얻었다.

출발이 늦은 만큼 글쓰기의 방식이 원숙하고 따뜻했으며, 세상 물정을 판단하는 시각이 예리하고 깊었다. 주로 자전적이며 생활 주변에 있는 얘기를 부드럽게 풀어놓았으나, 그 문장은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 불릴 만큼 감각적이면서도 정확했다. 더욱이 끝까지 지속적으로 붓을 들고 있었던 연유로 괴테나 황순원에게서 볼 수 있었던 노년의 문학, 곧 노년에 이르도록 글을 쓴 작가에게서 발견되는 진중하고 뜻 깊은 분위기의 문학이 가능했다.

선생의 문학 세계는 대체로 세 분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등단작인 ‘나목’이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처럼 청소년기 이래로 혹독하게 겪은 역사적 현실을 소설화한 것이 첫째이다. ‘휘청거리는 오후’나 ‘도시의 흉년’처럼 산업화시대 소시민의 허위의식을 적출한 작품이 두 번째면, ‘미망’처럼 근대 이후 개성을 중심으로 한 사대부가와 기층민의 삶을 시대사적으로 다룬 경우가 세 번째이다. 이 모든 작품들에는 지난날의 상처를 따뜻하게 되돌아보며 치유의 힘을 발양하는 인본주의가 깃들어 있다.

적잖은 사람들이 여성적 시각을 중심으로 하는 선생의 작품에서 페미니즘의 코드를 찾아내고 이를 강조하여 말한다. 그러나 그 페미니즘은 날카롭고 전투적인 것이 아니라, 여성의 눈이 가진 세미한 관찰력을 살린 온유한 성격에 기초해 있다. 그와 같은 선명한 자기 빛깔, 자기만의 스토리텔링 유형은 작품의 내용 못지않게 그것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형식이 된다. 그 내용과 형식 양자를 거멀못처럼 동시에 붙들고서, 선생은 문학적 성취와 독자의 사랑을 함께 얻었다.

‘실락원’의 저자 존 밀턴은 말년에 자신의 문학인생을 반추하면서, 험악한 시대를 깨어 있는 정신으로 살았다고 술회했다. 그 언표는 시대의 아들로 세상에 던져진 작가가 어떤 책임의식을 갖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반증이 된다. 춘원 이광수가 끊임없이 ‘문사(文士)’로 자처하면서도 마침내 자신에게 부하된 시대의 의미를 감당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근대문학의 아버지를 잃었다. 반면에 박완서 선생은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았고 그렇다고 완만한 걸음걸이로 나태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시대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했고 또 동시대인에게 완곡어법의 질문을 던졌다. 이제 우리는 박완서 없이, 다시 말해 근대 이래 역사의 상처를 잔잔한 호소력으로 풀어내는 현장 체험의 이야기꾼 세대 없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야 한다. 인간의 위의(威儀)를 훼손하지 않고 아픔과 슬픔을 표현하는 법, 부끄러운 과거의 상처를 새 의욕으로 전화(轉化)하는 법을 가르친 작가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 빈자리에 작가의 시대적 사회적 책임이 어떤 중량을 가졌는지, 명료한 깨우침이 잔영처럼 남았다.

선생은 작품세계가 그랬던 것처럼 생활에서도 정이 많고 온화했던 분이다. 박경리 선생이 타계했을 때 그토록 가슴 아파하며 인생 무상을 탄식하던 당신은, 이제 그 스스로 풍성하던 잎을 다 벗어버린 겨울나무로 돌아갔다. 우리 문학은 그리하여 기릴 만한 품성과 빼어난 문학을 함께 갖춘 보기 드문 작가를 잃은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종회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