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협력사와 甲乙 관계 없다는 구본무 회장

입력 2011-01-31 17:32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협력회사와 갑을(甲乙) 관계에서 벗어날 것을 임원들에게 주문했다. 구 회장은 지난 27일 경기도 광주 곤지암리조트에서 신임 임원 93명과 가진 만찬 자리에서 “이제부터 협력회사와 갑·을 관계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협력회사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협력회사 성장이 곧 우리의 성장임을 인식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의 발언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우리 산업계는 이런 발언이 뉴스가 될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

황에 놓여 있다. 경제 교과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상호 보완적 파트너 관계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협력회사 사장은 대기업 직원들을 상전 모시듯 하면서 회식비 지원에 술 접대, 골프 접대를 통해 겨우 협력회사 지위를 유지한다. 그럼에도 납품단가를 올리지 못해 원자재값 상승과 환율 변동 부담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그 결과 지금 대기업이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생존의 기로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에게 상생경영을 주문하고, 지식경제부 등 관련 부처가 적극 나서고 있지만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중소기업은 많지 않다. 역대 정권마다 습관처럼 해온 이야기라는 것이다. 매번 정부는 주문하고 대기업은 약속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제도적 장치도 중요하지만 인식의 전환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납품단가조정협의제가 도입됐고 정부에 분쟁조정도 신청할 수 있지만 이를 이용하는 중소기업은 거의 없다. 대기업과 거래를 끊을 배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결국 대기업이 협력회사를 시혜의 대상이 아닌 성장의 동반자로 인식할 때 상생경영은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다.

LG는 다른 재벌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협력회사에 대한 지원이 좋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 구 회장의 이 같은 인식과 철학이 반영됐을 것이다. LG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중소기업 상생경영의 모델이 돼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