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혜림] 참 답답한 여성가족부

입력 2011-01-31 17:35


◇아빠 : 함께 장보기, 설거지, 청소 등 분담하기, TV시청·술자리보다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놀이 찾기, 처가 방문하기 등

◇엄마 : 운전하느라 지친 남편 어깨 주물러주기, 동서지간에 따뜻한 말 한마디, 아이에게 숙제·공부 타령하지 않기 등

◇할아버지·할머니 : 간소한 상차림 먼저 권하기, 아들과 사위 역할 분담해주기, 기쁘게 며느리 친정에 보내주기 등

◇나 : 잔심부름하기, 이불 개기, 내가 먹은 것 직접 치우기, 동생들과 놀아주기, 할아버지·할머니와 대화하기

여성가족부가 ‘가족이 함께하는 따뜻한 설날 만들기’ 캠페인을 펼치면서 내놓은 ‘즐거운 설 보내는 우리 가족 실천전략’이다. 구제역 덕을 보는 집단(?)으로 꼽히고 있는 ‘이 땅의 며느리들’에게 이 캠페인은 어떻게 다가올까? 힘이 될까? 위로라도 될까? 장손 며느리로 25년째 설을 맞는 기자의 개인적인 심정을 밝히자면 ‘어째 이리도 변하지 않을까’ 싶어 부아가 울컥 치민다.

여성가족부는 2001년 여성부로 출범했다. 그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명절문화 살림문화 등 5대 생활문화에서의 의식개혁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추석을 앞두고 ‘명절연휴, 아내도 쉴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성단체들과 ‘평등부부가 함께하는 새로운 명절문화 만들기’ ‘가정 내 남녀평등문화 뿌리내리기 사업’ 등을 펼쳤다. 주요 기차역, 고속터미널, 공항 등에서 명절문화 개선 홍보 전단도 배포했다. 그 이듬해, 또 그 다음해에도 비슷한 캠페인을 펼쳤다.

10년째 꾸준히 펼치고 있지만 명절문화가 변했다는 징후는 없다. 외려 남녀불평등한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만 있을 뿐이다. 굳이 통계수치나 설문조사 자료를 들이댈 필요도 없겠다 싶다. 각 가정에서 다들 느끼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여성가족부는 캠페인이라도 꾸준히 하면 명절문화가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10년쯤 해도 별 효과가 없으면 다른 방도를 찾는 것이 상식 아닌가 싶다.

이 땅의 아버지와 아들들은 부부는 유별(夫婦有別)하며, ‘사내는 부엌에 들어가선 안 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그들을 향해 1년에 두세 번 남녀는 평등하니 집안일, 아이 기르는 일도 똑같이 나눠 하라고 외친다고 귀에 들어오겠는가. 앞치마 두른 남편 사진 프린트된 종이나 나눠준다고 해서 ‘아, 나도 이렇게 해야겠군’하며 개수대 앞에 서겠는가. “여성가족부가 뭐 이깟 일이나 하는 거야” 콧방귀나 뀌지 않으면 다행이다.

지난해부터 청소년의 육성·보호 기능까지 맡게 된 여성가족부는 2011년 업무보고에서 5대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청소년 밝은 미래 열기를 꼽았다. 청소년을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건강한 성장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사업을 다각적으로 추진한다고 했다. 한데 건강한 성장 환경 조성 사업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청소년들에게 남녀평등 사상을 심어줄 만한 항목은 없었다. 남편과 아버지가 될 청소년들에게 남녀 차별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며 가사와 육아 분담은 효율적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교육하는 것이 1년에 두세 번 캠페인을 벌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이는 부부 갈등을 줄여 당사자들 미래의 행복한 가정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남녀평등 교육 프로그램 실시,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도입한 교과서 개선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초등학교 1∼4학년 전 과목 교과서와 중학교 1학년 국어, 사회, 도덕, 기술·가정, 체육, 영어 교과서 등장 인물은 남성 63%, 여성 37%로 남성이 우세하다. 그 내용은 더욱 남성중심적이다. 여성지위 향상과 가족정책을 맡고 있는 여성가족부가 좀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 그래서 10년 뒤 “예전에는 명절 때 남편들은 동양화 놀이나 했다는구만” 이런 남성들의 투정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김혜림 문화과학부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