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교회는 무엇인가
입력 2011-01-31 17:41
(30) 조직인가 영적 친교인가
교회는 오랜 역사를 가졌다. 따져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성회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하신 그 교회부터가 우리 기독교의 교회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한데 교회는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아주 복잡한 격론에 시달려 왔다. 교회가 이 세상의 조직을 가지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 그런 것 없이 그저 순수한 영적 교제로 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였다. 초대교회에서도 마니키안이나 영지주의자들 그리고 몬타니즘을 따른 자들이 교회 조직을 격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중세 교회의 시대에도 교황청과 교회를 공격하는 카사리파나 왈덴시스파와 같은 그룹들이 적지 않았다. 신성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슨 조직과 기구를 가지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신령신비주의계나 일부 성령파에서는 아직도 그런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전통적 입장에서는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 두 가지가 있어서, 지상의 가시적 교회는 흠이 많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는 참된 이상적 교회라고 이분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어쨌든 교회가 이 역사 안에 살아 있는 한 교회의 조직은 불가피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령 충만한 교회로 알려진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당회라든가 제직회와 같은 기본적인 것 말고도 행정 관련 국이 20여개요, 부가 70여개에 이른다. 부목사도 60여명에 이르고, 각각 행정과 목회와 교구의 조직들을 담당하고 있다. 아무리 신령한 교회라 할지라도 순수하게 신앙을 지키는 영적 친교로서는 그 사명을 다할 수 없고, 그런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조직과 질서를 위해서 영적 역사를 경시한다면 가톨릭교회의 잘못이고, 영적 자유를 위해서 조직을 소홀히 한다면 개신교의 잘못일 수 있다. 우리는 이 양쪽을 다 갖춘 공식이 필요하다. 하나를 버리고 다른 것만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교회를 존속시키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조직이요 질서이다. 우리의 생명도 우리 신체의 여러 기관 때문에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신앙의 불타는 경험과 감동, 찬송의 내적 힘이 그 근본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반드시 밖으로 연장되어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그때 조직의 통로 없이는 그 힘이 밖으로 작용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참 묘한 일은 우리 교회가 1907년 평양대부흥을 겪은 직후에 독로회를 조직했다는 사실이다. 교회마다 조직을 굳히고 성례를 지켰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이 바로 한국교회가 세계적인 사도적 교회로 정착하였다고 세계로부터 갈채를 받는 이유이다.
교회의 역사는 순간순간의 폭발적인 경험을 정점으로 접속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일정한 연속성을 가진 선으로 보아야 옳다. 생명은 다 그렇지만 연속성의 요소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건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민경배<백석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