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후반기의 감사원] “감사원장은 청렴 상징… 대통령도 옷깃 여미게 해야”
입력 2011-01-31 17:51
“도대체 감사원장 자리를 이렇게 오랫동안 비워두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요?”
전윤철 조선대 석좌교수는 핏대를 세웠다. 참여정부부터 이명박 정권 초기까지 감사원장을 역임한 그는 역대 감사원장 중 유일한 행정부 출신이면서 최장수 감사원장이란 기록을 남긴 인물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감사원 출신 인사들은 감사원의 독립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비어 있는 원장실=우리나라 행정부에서 대통령과 국무총리에 이어 세 번째 자리라는 감사원장이 4개월째 비어 있다. 김황식 원장이 지난해 9월 총리로 옮겨간 뒤 정동기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공백이 길어졌다. 감사원 관계자는 “아무래도 설은 지나야 후임 인사가 이뤄질테니, 다시 청문회와 검증 과정을 거치면 3월에나 원장실이 주인을 찾을 것”이라며 “공백이 6개월까지 길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963년 감사원 창설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감사원장 공백은 감사원의 독립성 유지에 치명적인 위협이다. 전 석좌교수는 “감사원의 독립성은 어디를 감사해 달라, 어떤 판정을 해 달라는 외부의 주문을 차단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그러려면 감사원장의 의지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감사원 사무총장을 역임한 한 전직 감사관은 “감사원장은 국가의 청렴함을 상징하는 존재”라며 “대통령도 그 앞에선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다잡게 하는, 이를테면 성직자 같은 인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력과의 밀착=감사원장이 국무총리로 가기 위해 거쳐 가는 자리쯤으로 여겨지는 풍토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황식 총리는 감사원장 청문회 당시 “마지막 공직으로 알고 봉사하겠다”고 했지만 임기의 절반인 2년만 채운 뒤 총리로 지명됐다.
전 석좌교수도 “재직 시절 총리를 맡으라는 권유가 세 번 있었다”며 “마지막에는 정말 되는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감사원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1990년 재벌의 로비로 감사원의 감사가 중단된 사실을 폭로했던 이문옥 전 감사관은 “감사원 직원들이 청와대 등 권력기관에 파견 나가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이 감사 대상 기관과 밀착하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외부 기관에 파견된 감사원 직원 21명 중 절반에 가까운 9명이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다.
이 전 감사관은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을 때 감사원 직원들이 대거 차출돼 대대적인 공직자 감찰을 벌였다”며 “당시 협력한 사람들이 훈장을 받고 국가유공자가 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감사원 직원들이 퇴직한 뒤 대기업에 재취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그러니 현직에 있을 때 잘 보이려 하지 않겠느냐”며 기업과의 유착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자리 찾기 시급=감사원이 사후 감사에 치중하고 있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 전 석좌교수는 “사후약방문 격인 결산 감사보다는 부패의 고리를 끊는 제도 개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03년 감사원장 후보로 지명됐던 윤성식 고려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정부 개혁의 비전과 전략’에서 “감사원 개혁 없이 정부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윤 교수는 △정부 각 부처의 결산 보고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모든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적발 위주 감사를 무작위 표본 감사로 전환하며 △감사원은 정책의 효과와 효율을 평가하는 심층 감사에 집중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특별기획팀=정승훈 김지방 정동권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