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6) 국민연금으로 ‘은빛겨자씨기금’ 창설한 송래형씨

입력 2011-01-31 17:26


“여권 없어요, 해외여행비 아껴 홀몸노인 도와야지…”

국민연금의 절반을 홀몸노인을 위한 기금으로 쾌척, 아름다운재단의 ‘은빛겨자씨기금’을 창설한 송래형(68)씨에게는 여권이 없다.

1998년 우연히 서울 불광동에서 홀몸노인들이 어렵게 사는 모습을 본 뒤 해외여행을 가지 않기로 결심한데 따른 것이다.

해외 관광 비용의 10%만 기부하면 하루하루를 힘들게 생활하는 홀몸노인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희(70세)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 해외여행 한번 가지 않았다. 퇴직하자 자식들이 해외 나들이라도 다녀오라고 권유했지만 듣지 않았다. 무역회사에 근무해 해외에 나갈 기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동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며 사양했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여행을 다녀온 것은 한 차례 제주도 여행이 유일하다. 이 여행도 아내에게 해외여행을 시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억지로 행한 것이었다.

송씨는 홀몸노인들을 돕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경제적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1남3녀를 교육시키고 출가시키다 보니 재산을 모을 수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땅 한평 가져본 적이 없다. 재산이라고는 아내 명의로 된 경기도 김포의 25평형 아파트 한 채가 있을 뿐이다.

고민 끝에 송씨는 국민연금에 가입된 금액 중 자신의 노력에 따른 대가가 아닌 회사가 부담해준 절반을 홀몸노인들에게 내놓기로 결심했다. 그는 2003년 당시 국민연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1000만원을 아름다운재단에 기탁하며 “자식들이 있지만 돌볼 여력이 없는 데다 국가도 자식들이 있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 복지 사각지대 노인들을 돕는 종잣돈으로 사용해 달라”는 뜻을 밝혔다.

아름다운재단은 그의 뜻을 높이 사 2003년 1월 은빛겨자씨기금을 만들고 ‘국민연금 1% 나눔운동’을 펼치게 됐다. 은빛겨자씨기금의 은빛은 실버세대를 나타내고 겨자씨는 아주 작은 것을 의미한다.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60세 이후에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기부라는 뜻을 담고 있는 셈이다.

송씨의 기부는 종잣돈 기탁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2004년 10월부터 2009년 4월까지의 직장생활 중 60세가 넘어 받았던 국민연금 전액을 또 기부했다. 퇴직 이후인 2009년 5월부터는 많지 않은 국민연금 중 4만원을 떼어내 매월 기부하고 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기부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은빛겨자씨기금에 대한 사회적 반향은 기대 이상으로 컸다. 매월 기탁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회사원 교사 목사 스님 수녀 등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2006년에는 포항제철 경영진이 외부 강연료와 원고료 등 1700만원을 모아 겨자씨기금에 내놓았습니다. 초·중·고 교사들의 참여도 높습니다. 아름다운재단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기부자 명단을 한번 훑어보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정도로 많은 분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2009년 3월엔 막내딸을 결혼시키면서 하객들에게 답례 편지와 함께 은빛겨자씨기금 결산 보고서를 보냈다. 기금의 취지와 함께 그동안의 성과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송씨가 근무하던 회사 사장은 이를 보고 “성과에 놀랐다”며 1000만원을 선뜻 기탁하기도 했다.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한 박원순 변호사는 이런 송씨를 일컬어 ‘모금 전도사’라고 부른다. 사심 없이 헌신하고 봉사하는 송씨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별칭이다.

후원이 답지하면서 기금은 당초 목표 1억원을 훌쩍 넘어 현재 10억원에 달하고 있다. 은빛겨자씨기금은 전국 84개 복지관으로 보내져 3617명의 홀몸노인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그동안 도움을 받은 노인은 연인원 1만1999명에 이른다. 호적상 자녀가 있어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인이 대부분이다.

송씨는 기금을 좀더 효율적으로 모으기 위해 65세가 넘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자 2007년 1월 이 교통비를 모으는 ‘티끌모아태산기금’을 만들었다. 이 기금이 모아지면 은빛겨자씨기금으로 편입해 활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참여하는 노인이 거의 없어 그동안 송씨 혼자 188만원 정도를 모았다. 희망제작소는 그의 이런 활동을 보고 2008년 해피시니어상을 줬다. 송씨는 우리나라의 기부문화에 대해 낙관하는 듯했다.

“요즘 계속되는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이 기부문화에 동참하고 실천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는 나라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아끼고 남겨 소액이라도 기부하는 국민들의 심성을 보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분명 밝습니다.”

송씨의 기부는 금전적인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1999년 12월 12일엔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이어 2005년 8월에는 부인의 동의를 얻어 시신 기증도 약속했다.

송씨는 기부활동을 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었다. 또 조금이라도 옳은 길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수 없었다. 특히 타인을 의심하지 않게 된 것을 큰 소득으로 꼽았다. 그는 누구든 기부에 동참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음을 믿게 됐고 처음 만난 사람도 자신의 일에 도움을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송씨의 이런 삶에는 신앙생활이 바탕이 됐다. 그는 16세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술·담배·유행가 등을 배우지 않았다. 그리고 지연·학연·종교 등 세 가지를 따지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왔다. 선입견을 갖지 않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남 보성이 고향이고 순천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지난해 6월 전남 해남군 삼산면 창리로 귀촌했다. 아파트가 팔리지 않자 전세로 내놓고 그 돈으로 큰사위(45)의 부모가 살던 농촌 빈 집을 구입해 이사했다. 지난해 4월 정년퇴직 후 농촌생활을 할 생각이었던 참에 갑자기 기관지가 약화돼 체중이 감소하자 의사가 공기 좋은 농촌생활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송씨는 탁 트인 벌판 건너 멀리 두륜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데다 마을 입구에 작은 교회가 자리잡고 있어 연고가 없지만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선택했다.

그는 “전통적 유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6살 무렵 마을에 온 선교사들이 순수하게 봉사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을 보고 교회에 나가게 됐다”며 “교파를 초월한 신앙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이 작은 교회야말로 노후에 의지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송씨의 농촌생활은 검소하기 짝이 없다.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집 텃밭 200㎡에 배추 무 마늘 양파 등을 소일거리로 가꾸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는 배추 100포기를 수확해 담근 김장을 자식들과 나눠 먹었다. 닭 5마리와 개 4마리도 키우고 있다.

“텃밭에 각종 채소를 재배해 자급자족하고 있다”는 송씨는 “농촌생활은 큰돈이 들지 않아 국민연금만으로도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귀촌한 지 7개월 남짓이지만 건강이 호전돼 체중도 다시 늘었다.

그는 최근 그동안 걸어온 길과 평소의 생각을 정리해 ‘가족’이란 소책자를 만들었다. 타인들이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은빛겨자씨기금에 동참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식들과 주변 친인척 등 지인들에게 이 책자를 나눠주고 있다.

매주 월요일이면 친구들도 사귈 겸 취미생활로 해남노인종합복지관을 찾아 고사성어 강좌를 듣는 송씨의 새해 소망은 여생을 외롭게 보내는 홀몸노인들의 자식들이 부모를 찾아 다시 돌보는 것을 보는 것이다.

해남=글·사진 이상일 기자 silee06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