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후반기의 감사원] ‘정책 성과’ 알고 싶은 대통령, 권력 눈치보는 감사원
입력 2011-01-31 17:55
집권 4년차 때 감사원 많이 찾는 이유
집권 4년차 대통령은 감사원을 찾는다. 감사원을 권력기관의 하나로 백안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다. 4년차 대통령은 절박해진다. 권력의 무게가 다음 대통령으로 쏠리기 전 재임 중 성과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해라는 인식에서다. 3년간 몰아치듯 진행한 정책성과도 돌아보고, 권력누수에 대비해 공직사회 기강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십상이다. 이런 일에 감사원만한 기관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시간낭비를 원치 않았다. 인수위 시절부터 국정철학을 공유한 측근(정동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4년차 감사원장 후보로 내세웠던 이유다. 문제는 대통령이 감사원에 다가갈수록 감사원의 독립성은 훼손된다는 것이다.
◇집권 4년차 감사원의 역할=감사원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임기 연차별로 가장 극명하게 달라진 것은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이었다. 이 시기 감사원 감사사항을 통해 본 활동 내역은 집권 첫 해 감사원 감사의 경우 정부기관별 회계지출 내역 등을 들여다보는 일반감사 비중이 절반 이상인 57.2%(115건)를 차지했다. 김원기 당시 국회의장을 만나 독립성 논란에 휩싸인 감사원을 “국회에 선물로 주겠다”고 발언한 것도 집권 초기다. 감사원에 무관심했던 그도 집권 4년차가 되자 달라졌다. 그래서인지 감사원도 일반감사를 37.7%(26건)로 줄이는 대신 성과·특정감사 비중을 크게 늘리는 것으로 화답했다. 감사원 고위직을 지낸 A씨는 “노 전 대통령은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나중에 어떻게 평가받을지에 관심이 많았다”며 “본인의 10대 국정과제도 감사원이 평가해줬으면 좋겠다고 한 것 역시 집권 4년차였다”고 말했다.
감사사항도 ‘의약품 등 관리대책 추진실태’ 등 세부사업 위주였던 1∼3년차와 달리 4년차엔 ‘주요사업 추진실태’, ‘경제규제개혁 추진실태’, ‘지역개발사업 추진실태’ 등 큰 덩어리로 진행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외환위기라는 변수를 제외하면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외환위기 극복이 최대 과제였던 집권 첫 해 ‘외환 및 금융관리 실태감사’ 등 특정감사가 유독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집권 후반으로 갈수록 성과·특정감사 비중이 높아졌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국정 조력을 해야 하는 입장이니 만큼 전반적으로 (대통령의 국정 방향과) 흐름이 유사해질 수 있다”며 “우리가 (감사 대상으로) 고른 주요 정책사업이 집권자 입장에서도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대통령의 요구에 의한 것은 아니다”고 항변했다.
◇역대 대통령과 감사원 관계=감사원 감사사항에는 역대 정권의 고민이 투영돼 있다. 문민정부(1993∼1997년) 시절 감사원은 성과보다 오점 관리에 치중했다. 서해훼리호 침몰(1993년),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등 해마다 찾아오는 대형 사고에 국정지지도가 흔들리자 감사원을 동원해 건설사 군기잡기에 나선 탓이다.
감사원 출신 B씨는 “당시엔 부실공사 추방과 안전문화 정착이 감사원의 최대 화두였다”며 “매년 감사원 주관으로 건설사를 불러 공사관계책임자회의를 열었고, 문민정부의 부실공사기동점검반(1996년)에 이어 차기 정권에서도 대형공사전담반(1998년)이 설치됐었다”고 설명했다.
감사원 출신 다른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은 본인이 내놓은 아이템에 대해 주무부처의 화려한 숫자와 언론의 비판 사이에서 뭐가 맞는지 알고 싶어 했다”며 “국정에 익숙해질수록 장관 입이 아닌 감사원의 눈과 입을 활용하려 했다”고 말했다.
행정조직 다잡기와 4∼5년차 권력누수 차단 의지도 강해져 공직기강 관련 특정감사도 이 시기에 집중됐다. 본보 분석 결과 역대 정권의 공직기강 감사가 총선거와 지방선거 외에 집권 4년차와 대선이 있는 5년차에 잦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 관계자는 “대통령 입장에선 참모가 전부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가져주면 좋은데 후반으로 갈수록 참모들의 생각이 많아진다”며 “정치권 진출을 원하거나 차기 정권과 손잡고 싶은 사람도 생기니 감사원을 통해 참모들 군기를 잡고 조직도 추스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팀=정승훈 김지방 정동권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