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86)

입력 2011-01-31 09:40

선한 목자-석해균 선장

요즘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과 강연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의’라는 단어는 다분히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용어였습니다. 과거에는 그렇게 사용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생뚱맞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편입되어, 사고와 의식이 ‘경제’에 몰입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정의’일까요?

마이클 센델은, “정의를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으로는 행복, 자유, 미덕을 들 수 있다. 즉, 정의가 사회 구성원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혹은 사회 구성원 각각의 자유로움을 보장할 수 있는지, 아니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쳐야 하는지로 정의로움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픈 사람이 있을 때, 그를 위해 기도해주고 치료해주는 행위는 ‘긍휼’입니다. 그러나 아픈 사람들을 위해 ‘병원’을 세우는 것을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긍휼’은 누구나 자기 역량만큼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의’ 즉, 병원을 세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른바 지도층이 아니면, 여러 사람을 리더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정의’란 일종의 사회적인 ‘리더십’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 또는 리더십의 기본이 ‘정의’라는 것입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해군의 구출로 풀려난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이 총상을 입고 위급한 상황에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그는 온갖 신변의 위험을 무릅썼다고 합니다. 결국 해적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받아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음에도 생명이 위독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석 선장은 선장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당연한 일’이 바로 지도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석 선장이 했던 ‘선장으로서의 지극히 당연한 일’은 마이클 센델이 말하는 정의의 세 가지 기준인, 행복, 자유, 미덕에 가장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정의’의 표상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요 10:11)

허태수 목사(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