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는 구제역 바다에선 저수온증… 양식장 떼죽음

입력 2011-01-30 18:56


한파 피해 여수 참돔 양식장 르포

한겨울에도 난류가 흘러 씨알 굵은 참돔이 팔딱팔딱 뛰어올랐던 전남 여수 가막만 일대 양식장이 생기를 잃었다. 한파로 평년보다 낮은 수온을 견디지 못하고 참돔이 집단 동사했기 때문이다. 아직 피해가 덜한 양식장은 한파가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설을 앞둔 지난 29일 오전 11시20분쯤 전남 여수시 신월동 항구에서 배를 타고 20분을 달려 도착한 화태리 가두리 양식장에는 차디찬 적막만 흘렀다. 바닷바람에 동사한 참돔 비린내가 묻어났다. 지난주 수온이 평년보다 4도나 떨어져 이곳에서 참돔 수만 마리가 얼어 죽었다.

어부들이 잠시 쉬려 만든 간이 건물 앞에는 20㎝ 크기의 참돔 몇 마리가 시커먼 내장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몇 발자국 옆에 놓인 포대자루에는 어른 손가락 크기의 죽은 치어가 가득 담겨 있었다. 온도계 눈금은 영하 1도를 가리켰다.

참돔은 수온이 7∼8도 이하로 떨어지면 활동성이 떨어지고 5∼6도 밑으로 내려가면 폐사하는 온수성 어종이다. 겨울에도 수온이 7도 이상인 여수 연안은 참돔 양식의 적지로 꼽혔다.

그러나 올해는 이상 한파로 여수 연안 수온이 평년보다 3∼4도가량 떨어졌다. 섬진강의 찬물이 연안에 흘러들었고 바람도 강했다.

12㎝ 너비의 나무 기둥 2개를 사다리처럼 이어 붙인 좁은 길을 따라 어부 박도진(50)씨의 가두리 칸에 도착했다. 가로 세로 길이가 각 6m쯤 되는 가두리 칸에는 길이 10㎝ 크기의 참돔 10여 마리가 둥둥 떠 있었다. 몇 마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옆으로 헤엄치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박씨는 지난해 5월 이곳에 새끼 참돔 2만4000여 마리를 풀어 놓았다.

“바다도 잔잔하고, 간만에 날이 좋네. 허허. 언능 시작하자고.” 억지로 쓴웃음을 지으며 박씨가 인부 3명과 그물을 끌어 올렸다. 폐에 물이 들은 고기는 무게가 상당해 기우뚱거리며 힘을 줘야 했다. 곧 하얀 배를 드러낸 물고기가 끝없이 올라왔다. 죽은 지 꽤 시간이 흘렀는지 고기가 힘이 없이 흐물흐물했다.

참돔은 추위를 받으면 평형감각을 상실해 똑바로 헤엄치지 못하고 물위로 올라온다. 이 상태가 지속되다 동사하면 물위를 둥둥 떠다니다 다시 바닥에 가라앉는다. 박씨가 뜰채로 고기를 포대자루에 담았다. 순식간에 포대 10개가 가득 찼다.

“어이 이 사람, 천천히 담아. 자빠지것네.” 박홍광(70) 어촌계장이 안타깝게 건넨 말에 박씨는 “보상은 얼마나 받을 수 있것소”라고 되물었다.

보상액은 딱 입식(入殖) 신고 물량만큼만이다. 박씨는 지난해 5월 입식물량으로 2만 마리만 신고했다. 대개 20g짜리 치어를 상품 가치가 있는 800g까지 키우려면 3년이 걸린다. 하지만 보통 20∼30%가 자연사하기 때문에 어부들은 입식 때 신고 물량보다 많은 치어들을 키운다.

보상비는 턱없이 적다. 정부는 어부가 폐사 신고한 만큼 새로 물고기를 넣으면 사후에 마리당 치어는 210원, 성어는 1200원을 보상해 준다. 3000원짜리 성어 1만 마리를 넣으면 1200만원만 지원하는 식이다. 그동안 먹인 사료값은 회복 불가능이다.

여수시 돌산읍, 남면, 화정면의 육지 근처 가두리 양식장 일대 참돔은 2주 전부터 무더기로 폐사했다. 육지에 가까운 양식장은 지난주까지 200여만 마리가 죽어 나갔다. 아직 조사를 마치지 못한 물량까지 합하면 동사 물고기는 500여만 마리에 달한다. 참돔 동사 사태는 아직 진행형이다. 연안에서 먼 화정면 제도리 어장에도 지난주부터 20㎝가량 되는 참돔이 둥둥 떠올랐다. 찬 기운이 먼 바다까지 퍼졌다는 뜻이다. 게다가 참돔은 한번 저수온을 경험하면 스트레스로 인한 쇼크를 받아 결국 죽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지금은 살아 있는 물고기들도 시간이 지나면 폐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화태 양식장에서 배를 타고 화정면 쪽으로 향하는 동안 가두리 칸 수십여개가 바둑판처럼 모여 있는 대형 양식장 3∼4곳을 지나쳤다. 하지만 예년 같으면 설 선물로 내다 팔기 위해 물고기를 뜰채로 건져냈다고 한다. 하지만 어부들이 보이지 않았다. 참돔 동사 사태가 이미 여수 연안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과학원 여수지원 임여호 소장은 “대개 2월 초·중반의 수온이 1월보다 낮아 동사 피해는 계속될 것”이라며 “낮은 온도에 비교적 강한 감성돔까지 피해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여수=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