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재희] 새롭게 만나는 나의 얼굴
입력 2011-01-30 19:15
어느 날 모임이 끝나고 한 집사님이 스마트폰을 들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폰으로 사진을 찍은 후, 연예인 누구를 얼마나 닮았다며 호들갑을 떨자 주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스마트폰에는 이렇게 사진과 연예인이 얼마나 닮았는지를 말해주는 응용프로그램이 있는가 보다. 어떤 부인은 날씬한 몸매의 젊은 연예인을, 다른 부인은 미스코리아 출신 연예인을 닮았다고 나왔다. 본인들은 그것이 자신의 모습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인 듯 흐뭇해했고, 주위 사람들은 속에 감추어져 있던 아름다운 흔적을 찾아내며 소란을 떨었다.
집사님은 내게도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을 찍었다. 심상치 않은 매치가 나왔는지 그는 갑자기 휴대전화를 숨기며 웃기 시작하는 거였다. 한바탕 웃고 난 그는 투덕투덕하게 생긴 남자 MC가 제일 닮은 연예인이고, 나이가 있고 체격도 있는 여자 연예인이 두 번째로 닮은 연예인이라고 말했다. 주위에 있던 우리들은 한참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 웃자고 하는 놀이였으니까.
집에 돌아와 옆에 있는 딸에게 내가 정말로 그렇게 생겼느냐고 물었다. 딸은 스마트폰 프로그램이 어설프다는 둥, 카메라가 안경을 쓰면 인식을 잘 못한다는 둥, 이런저런 이야기로 엄마를 위로하려고 애썼다. 기계가 거짓을 말하지는 않을 테니 아무래도 객관적인 내 모습은 그렇게 보이는가 보다. 스스로 느끼고 있는 내 모습이 그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것을 보면 아마도 나는 자신을 훨씬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야 사진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찍힌 것 같은데, 유독 내 모습만 어그러지게 나왔던 이유를 알듯 싶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안경을 쓰기도 하고 벗기도 하며 나의 모습을 다시 살펴봤다. 어느 사이에 나는 많이 늙어 있었고, 눈초리는 축 처져 있었다. 눈썹연필을 가지고 처진 눈초리 끝을 치켜 그려 보았다. 그 위에 덧칠하고, 또 덧칠해서 결국 사극의 악녀 모습으로 눈초리를 마음껏 과장해서 올려 그렸다. 내게는 익숙지 않은 우스운 모습이었지만, 그날은 왠지 그렇게 과장된 모습으로 한동안 있고 싶었다.
여러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거울을 보니 눈 밑에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 눈초리만 처져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다크서클도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까지 몰랐었다. 자세히 보니 그 다크서클은 좀 전에 그렸던 눈 화장이 눈 밑으로 꺼멓게 번진 것이었다. 혼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동안 소리 내서 웃었다.
세수를 하고 나니 처져 있던 마음도 함께 씻겼다. 불만족하게 생각하니까 내 모습이 많이 실망스러웠는데,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나니 그 모습도 그런대로 사랑스럽고 감사하게 여겨졌다. 이제까지 삶의 흔적을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내 모습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역사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겉모습은 날로 후패(朽敗)할 수밖에 없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롭고 풍요로워지는, 제대로 된 나잇값을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김재희 심리상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