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53) 호놀룰루 미술관의 한국 문화재
입력 2011-01-30 17:31
와이키키해변으로 유명한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는 세계 각국의 민속품과 미술품 등 6만점을 소장한 호놀룰루 아카데미 미술관이 있습니다. 폴 고갱의 명화 ‘타이티 해변의 두 여인’도 이곳 소장품이랍니다. 호놀룰루 태생 선교사의 딸이며 미술품 수집가인 앤 라이스 쿡(1853∼1934)이 1927년 개관한 이 미술관의 소장품 중 한국 문화재는 1000여점에 이르지요.
회화와 도자기가 주류를 이루는 한국 문화재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2001년 한국실이 별도로 설치돼 운영 중이랍니다. 이 가운데 12폭 병풍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사진)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해, 달, 구름, 물, 산, 영지 등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자연물 중심에 바다를 배경으로 복숭아나무와 학을 부각시킨 이 병풍은 국내에 있다면 국보로 지정될 만큼 가치있는 유물로 평가됩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국외 소재 한국 문화재 조사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과 2005년에 실시한 현지 조사 결과 그림은 진채법(眞彩法·단청처럼 매우 진하고 불투명하게 채색하는 것)으로 도화서 화원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임금의 영정 모사 기록인 ‘영정모사도감의궤’(1901)에 보면 이러한 해학반도가 제작된 기록이 있어 왕실용 병풍이라는 사실을 짐작케 하지요.
한지와 면포를 사용해 병풍틀을 연결한 것이라든지, 그림을 12폭에 연결하여 하나의 화면으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중국과 일본의 병풍과는 확연히 다른 우리 전통방식의 병풍 제작 기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로 720㎝, 세로 270㎝인 병풍은 12폭 연결이 모두 떨어져 낱폭인 상태였고 그림도 너덜너덜한 부분이 많았지만 14개월에 걸친 보존처리로 원상복구됐지요.
보존처리 과정에서 병풍 제1폭의 오른쪽 바위면에 금가루로 쓰여진 ‘군선공수임인하제’(?僊拱壽壬寅夏題)라는 글씨가 발견됐습니다. 글씨 중 임인(壬寅)이라는 간지로 보아 1842년 또는 1902년 여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고 용도는 왕실 인물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병풍 크기로 보아 실내보다는 실외 잔치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곳에 소장된 도자기도 보물급이 수두룩합니다. 꽃문양이 새겨진 ‘청자화형잔탁’은 고려청자의 신비로운 빛을 담고 있는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연잎과 연꽃이 음각으로 새겨진 ‘청자음각연엽무화형접시’는 이런 종류로는 거의 유일한 것이라는군요. 또 나전흑칠모란당초문상자, 주칠책장, 화각상자 등 목가구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이곳의 한국컬렉션을 조사한 성과물로 ‘미국 호놀룰루 아카데미 미술관소장 한국문화재’ 조사보고서를 최근 발간했습니다. 도록을 겸한 이번 보고서는 한글과 영문 두 개 언어판으로 제작돼 하와이 현지에서도 활용될 예정이랍니다. 미술관을 직접 가보지는 못하지만 소중한 우리 문화재를 도록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입니다.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