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바울 (6) 고난의 교훈 “인도 영혼을 더 사랑하라”

입력 2011-01-30 17:56


처음 도착한 병원은 의사가 없어 응급처치를 할 수 없었다. 다른 병원으로 가라 했다. 나를 데리고 온 청년은 다른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 역시 당장 의사가 없다며 이튿날 아침에야 의사가 온다고 했다. 소독과 지혈만 해놓고 밤새 기다리라고 했다. 답답하던 차에 가까스로 아내와 연락이 닿았고 근처에 있던 선교사들도 내 소식을 접했다. 다른 방법이 없어 밤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의사들은 내 상태를 확인했다. 밤새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피가 모자란 상태였고 수혈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델리에 있던 선교사 가운데 다섯 명이 혈액은행에서 헌혈을 했고 나는 혈액은행에서 인도 사람들의 피를 수혈받았다.

“다리가 회복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여요.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수술실로 들어가며 의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마음으로 응수했다. ‘그래, 마음을 굳게 한다. 하나님이 도우신다.’ 수술은 꽤 오래 걸려 8시간이나 소요됐다. 수술실 바깥에서는 가족과 선교사들이 나를 위해 기도했다.

드디어 수술이 끝나고 병실로 돌아왔다. 수술을 마쳤을 때는 두 다리 모두 붕대로 둘둘 말아 꼼짝하지 못한 채로 나왔다. 감사한 것은 처음에 나를 수술한 젊은 의사의 솜씨가 좋았다. 수술이 매우 잘됐다고 했다. 왼쪽 다리의 부서지고 날아간 모든 것을 연결했고 오른쪽 다리 피부 거의 모두를 떼어내 왼쪽 다리에 붙이면서 수술을 했다.

나는 한 달 동안 인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치료를 받았다. 며칠 동안은 약물 부작용으로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고 한 번은 드레싱을 하기 위하여 며칠 동안 의사를 찾으러 다니기도 했다.

인도 의료시설은 너무 열악했다. 환자는 넘쳐나고 의사 숫자는 부족해 한 번 치료를 받으려면 보호자가 의사를 찾으러 다니면서 수차례 요청을 해야 했다. 요청 끝에 의사가 해주는 것은 단지 수술과 드레싱뿐이었다. 입원 시 침대시트까지 환자가 모두 준비하고 가져와야만 했다.

한 달간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아내는 내가 학교 시간이 끝나고 돌아올 시간이 넘었는데도 나타나지 않자 불안해하며 기도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하나님은 계속 “염려하지 말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인도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아내에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한 달 후 강제 퇴원이 돼 한국으로 이송됐다. 한국에서는 4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동안 수술도 3차례 더 받았다. 전신마취 수술이었다.

교통사고를 통해 선교사는 영적 전투의 치열함 속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그의 백성을 지키시며 우리의 사명을 확인해 주셨다. 인도 영혼들을 더 사랑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삶을 드리라는 교훈이었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은 아직도 남아 있다. 왼쪽 다리 발목 관절이 잘 움직이지 않아 아직도 발을 끌면서 걷는다. 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래 서 있거나 걸어도 발목 부분이 많이 붓는다. 하지만 이만큼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어디인가.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도 내 몸을 회복시키시고 치료해 주신 하나님 은혜만 생각하면 목이 멘다. 나는 감사로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갖고 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