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유병규] 가족공동체 복지 복원해야

입력 2011-01-30 17:38


2011 신묘년 설 연휴가 시작돼 긴 시간 휴일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고향의 부모친지를 찾는 귀성객들로 도로가 붐빌 것이지만 앞으로는 고향 가는 길이 그렇게 힘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족에 대한 범위가 점차 좁아지고 있는 까닭이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0년 ‘제2차 가족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부모를 가족의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는 비율이 조사 대상의 22.5%에 달했다. 5명 가운데 1명은 친부모도 가족이 아니라고 여기는 셈이다. 나아가 3명의 1명꼴로 형제자매를, 절반가량은 배우자의 부모를 가족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친가와 외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족이라 여긴다는 응답은 5명 중 1명에 불과했다. 한국 사회에서 핏줄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져 적어도 삼대는 한 가족으로 여기는 전통적인 가족공동체가 붕괴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

가족공동체 약화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비용의 증가를 낳는다. 우선 사회 전체의 공동체 문화가 훼손될 수 있다. 가정은 한 사회의 기본 단위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익히는 최소 단위다. 홀로 살아가는 1인 가구나 부부 중심의 독립 가정만 늘어난다면 그만큼 자기중심적 사고와 행동에 익숙해져 사회공동체의 유대감도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자녀 교육의 어려움도 더욱 커질 수 있다. 맞벌이가 늘어나는 추세에서 자녀 양육이 힘들어지고 가정교육도 부실해지는 것이다. 가정이 무너지는 만큼 문제아는 늘게 마련이다. 더 큰 문제는 국가 복지비용이 급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조부모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으면 한국 노인들의 생활은 모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결국 노인 부양 부담금을 국민 세금으로 거둘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그렇잖아도 한국의 미래 복지비용에 대한 논란이 요란하다. 정부가 지원해 주는 무상복지는 마시멜로와 같이 달콤하고 유혹적이나, 이에는 반드시 막대한 재원이 요구된다. 국민들 표를 의식해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데 몰두하기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자생적인 복지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국 사회의 전통적 가정은 자식을 키워 놓으면 그들이 부모와 조부모를 부양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대표적 자생적 복지 체제였다. 한시라도 빨리 함께 어울려 사는 한국의 전통적인 가정공동체 복지 체제를 복원해 나가야 한다. 이는 양육 문제 등으로 출산을 기피하면서 나타나는 극심한 저출산 현상을 완화하는 데도 묘방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다세대 가정에 대한 보다 국가적인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다세대가 함께 사는 가정에 대해 소득공제나 학비감면 폭을 늘려나가는 방안을 강구해 볼 만하다. 또한 유년 시절부터 가족공동체의 소중함을 교육하고 국가적인 효부상 등을 정해 대대적으로 격려해 주는 문화를 조성할 필요도 있다.

가사 지원 서비스업도 활성화해야 한다. 다세대 가정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집안 청소에서 자녀교육, 그리고 노인 간병까지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다양한 집안일을 도맡아 해결해 주는 전문 서비스업이 발전한다면 다세대가 모여 사는 것이 어려운 일만은 아닌 게 된다. 가사 서비스업 발전은 가족공동체 복원에 도움이 되지만 서비스업 일자리 증대에도 기여한다.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 국내주택은 단독세대 중심으로 만들어져 왔다. 거실에 시아버지가 나와 있으면 며느리는 갈 데가 없는 구조다. 이제는 여러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복층 아파트나 동일층 다세대 주택 같은 ‘세대공존형 주택’을 만들어야 한다. 성경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했다. 다세대 가족공동체 복원은 이 땅에서 장수와 복을 누리는 비결이기도 하다.

유병규(현대경제연구원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