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신창호] 아이디드와 石 선장

입력 2011-01-30 17:37

아프리카 북동쪽 인도양과 아덴만을 접한 소말리아는 지금 거의 무정부 상태다. 이 나라가 ‘해적투성이’ 무법천지로 유명해진 건 1991년 무장 군벌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가 일으킨 내전 탓이다. 60년 독립하자마자 사회주의 일당독재 체제로 신음하던 소말리아는 아이디드의 회교혁명 내전 때문에 더 큰 나락으로 떨어졌다. 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디드가 채택한 전략은 서방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몸값을 받아 챙기는 것이었다. 1인당 GDP가 600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가난에 지친 소말리아 농부와 어부들은 속속 아이디드의 무법 작당에 합류했다.

96년부터 2003년까지 소말리아에는 무려 26개 정파가 “우리가 권력을 차지해야 한다”며 서로 혈투를 벌였다. 이 사이에 소말리아의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은 ‘정글의 법칙’ 속에 삶을 살아야 했다. 자신의 생명은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지(死地)에서 해적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속출했다.

순진하던 시골 농부와 어부들은 어느 날 기관총과 바주카포를 든 전사로 변신했고, 이들의 투쟁 대상은 외국의 값비싼 원료를 실은 대형 선박이 된 것이다. 아이디드와 온갖 군벌들은 해적의 뒤를 봐주고 이들이 챙긴 몸값 일부를 챙겨갔다. 그저 자신들의 권력과 부에만 관심 있다는 점에서 이 나라 정부나 반군 리더 아이디드나 별로 다를 점이 없다.

29일 이들 해적에 피랍됐다가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구출된 삼호주얼리호 석해균(58) 선장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구출 과정에서 해적 떼가 난사한 총탄을 몸에 지닌 채 말이다. 아주대병원에서 1차 수술을 마친 그는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선원들과 회사의 재산을 지킨 철인이다. 우리 해군의 구출작전에 결정적 공을 세운 그의 리더십은 소말리아 우두머리들의 그것과 너무나도 대비된다.

석 선장의 지혜로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선원들 가운데는 외국인도 있다. 그들은 현장에서 석 선장을 지켜봤다. 생명이 풍전등화에 놓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자기 자리의 의무를 끝까지 지킬 수 있는 용기를 현장에서 경험한 것이다.

소말리아 우두머리들은 처음엔 대단한 신념으로 무장했을 테지만 지금은 한낱 ‘조직폭력배 두목’이나 다름없는 꼴이다. 세상의 평화와 질서는 이들처럼 거창한 이념에서가 아니라 석 선장처럼 자기 자리를 올곧게 지키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신창호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