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농림 사의 표명-배경] “구제역 쓰나미 책임” 결단
입력 2011-01-28 18:28
28일 오전 10시6분 농림수산식품부 출입기자들 휴대전화로 짧은 문자메시지가 왔다.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 기자회견 : 28일(금) 오전 11시 기자실’.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이었다. 장관이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을 아는 간부도 소수에 불과할 정도였다.
노란색 점퍼 차림의 유 장관은 오전 11시부터 5분가량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 사태가 수습되면 물러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해 8월 30일 55대 농식품부 장관으로 임명된 지 8개월여 만이다.
‘오로지 사태 해결에 모든 생각과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이지만 책임론 등 정치적 논란이…’라는 대목에서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유 장관은 원고를 다 읽은 뒤에는 질의응답을 받지 않고 기자실을 떠났다. 기자회견 내내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주변에서 찬바람이 인다고 느낄 정도였다.
유 장관이 사태수습 뒤에 사퇴하겠다는 뜻을 전격적으로 밝힌 것은 끊이지 않는 책임론에 못을 박자는 의도다. ‘방역 컨트롤타워’가 흔들려서는 안 되므로 논란이 계속 확산되는 데 대해 선을 그은 것이다. 또 초기 방역에 실패하면서 구제역이 판데믹(pandemic·전염병의 대유행) 수준으로 번진 데 따른 부담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방역당국은 중간 역학조사결과에서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 확진이 늦어졌고, 분뇨설비 설치차량의 이동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등 ‘구멍’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경기, 인천, 강원, 충남북 등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방역대책은 ‘따라잡기’에 급급했다고 시인했다.
여기에다 매뉴얼에 집착하다가 예방백신 접종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은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막대한 예산 투입, 현장 방역에 나선 공무원 순직 등도 무거운 짐이다. 구제역이 8개 시·도의 63개 시·군으로 번지면서 살처분 가축 수는 288만686마리에 이르렀다. 보상금, 백신접종비, 방역비 등으로 3조원에 육박하는 재정이 투입됐다.
다만 유 장관은 당장 물러날 뜻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한창 구제역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사퇴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 장관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그동안 했던 것처럼 일선 방역현장을 점검하고, 간부회의를 주재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백신 접종으로 구제역이 진정 기미를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 완전 종식을 속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 공세, 책임공방에 밀려 장관이 사퇴하는 것은 되레 부담”이라고 말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