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가난도 막지못한 쇼… ‘파리36의 기적’
입력 2011-01-28 17:34
노동자와 음악과 파시스트와 사랑. 얼핏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1936년 파리에서는 무슨 일이든 있을 수 있었다.
‘파리36의 기적’은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파리를 배경으로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공존하고 노동자와 자본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회 분위기를 샹소니아 극장이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섬세하게 그려낸다.
한때는 잘 나가던 극장주가 빚을 갚지 못하고 자살하자 극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한꺼번에 실업자가 된다. 극장 무대감독 피구알(제라르 쥐노)의 아내는 집을 나가버리고, 아들 조조는 거리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구걸하다 경찰에 붙잡힌다. 아내와 아들을 잃고 뚜렷한 기술도 없는 피구알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샹소니아 극장을 살려내는 것이다. 피구알과 동료들은 미모의 여가수 두스(노라 아르네제데)를 채용하고 결의를 새롭게 다진다.
그리고 위태로움은 시작된다. 피구알이 샹소니아 극장에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 갈라피아는 사채업자이자 파시스트. 거기다가 두스의 후원자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두스는 갈라피아가 아니라 유태인 밀루를 사랑하고, 설상가상으로 유수의 레코드업체로부터 잇따라 캐스팅 제의를 받으면서 샹소니아엔 다시 위기가 닥친다. 전반부 느슨하던 전개도 점점 급박해진다.
영화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자유와 불온함의 도시 파리다. 그러나 파리의 명소나 아름다움을 과장해 비추는 촌스러운 시도는 없다. 1930년대, 생존의 문제에 이데올로기가 더해져 무슨 일이든 터질 것 같은 불안한 사회상이 샹소니아 극장의 재정난에 절묘히 겹쳐지는데 등장인물들은 이렇게 말한다. “보이지 않는 바다로 떠나자.” 주6일 60시간을 일해도 아무런 불평이 없는 피구알이나 극렬 사회주의자로 매사 냉소적인 밀루, 언제나 유쾌한 자키 등 파리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은 더할 바 없이 매력적이다. 사회와 비운의 희생자로 갖은 고생을 다 겪은 피구알은 다시 말한다. “바다는 어디에나 있지만 파리는 여기밖에 없다.” 그들이 긍정하는 것은 온갖 비운과 불안과 욕망이 어우러진 그 도시의 현재성이다.
이 영화를 ‘아르네제데에 의한 영화’라고 말하긴 힘들지 모르나, 적어도 ‘아르네제데를 위한 영화’라고 할 수는 있을 법하다. 그는 아름다움과 차가움과 열정이 공존하는 얼굴과 연기로 단연 이목을 집중시켰다. 음악과 뮤지컬, 드라마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시종일관 귀가 즐겁다. 극장에서 두스가 ‘파리에서 멀어지면’을 부를 때 그에 공감하며 흥이 나는 것은 샹소니아 극장의 관객들만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영화 초반 흡입력이 다소 약해 지루한 감은 있다. ‘코러스’를 연출한 크리스토프 바라티에르 감독의 작품으로 다음달 10일 개봉.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