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의 이지러진 공간에 어른이 되지 못하고 숨어든 ‘또다른 나’… 이신조 장편소설 ‘29세 라운지’
입력 2011-01-28 17:33
소설가 이신조(37·사진)가 지난해 문학 웹진 ‘뿔’에 연재했던 장편 ‘29세 라운지’(문학에디션 뿔)가 출간됐다. 소설은 일종의 도플갱어(분신)를 차용하고 있다. 도플갱어 현상은 자신의 실제 성격과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평소 자신이 바라던 이상형 혹은 그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도플갱어는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 각종 예술 작품의 중요한 소재로 이용되어 왔다.
‘29세 라운지’는 9년 전 쌍둥이 동생과 엄마를 불의의 사고 잃은 주인공 문나형의 변형된 도플갱어를 다루고 있다. 스물아홉 살 나형은 먼저 세상을 뜬 동생 수형의 이름을 빌려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면서 아내와 아이가 있는 유부남 세완과 아슬아슬한 연애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불륜을 보여주는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의 이야기를 통해 성인도 끊임없이 자란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장소설이다. 문체는 감각적이면서도 섬세하다.
“엄마와 수형 말고도 다섯 명이 더 죽었다.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열한 명이었다. 다음날 뉴스에는 더는 보도되지 않았다. 나는 한 달 넘게 학교에 가지 않았다. 내가 안세완이라는 이름의 물리과목 임시교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가 ‘그즈음’에 존재했던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즈음에 잠시 존재했다 이내 사라진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43분 18초가 고요히 유리관에 쌓여 갔다.”(96쪽)
어렸을 때부터 천식을 앓아 허약했던 지형과 건강했던 수형. 죽을 줄 알았던 지형은 살고, 대신 죽을 수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수형이 죽었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무너진다. 아내와 아들을 떠나보낸 후 갑작스레 중심을 잃고 늙어가기 시작한다. 나형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나형의 삶 역시 그날의 사건 이후 동요하고 들끓고 부유하는 시간으로 점철된다. 그러다 만난 게 세완이다. 우연히 출판일로 찾아간 어느 노교수의 연구실. 세완은 중성자보다 훨씬 작고 가벼워 유령 입자라는 별명이 붙은 뉴트리노를 연구하는 교수가 되어 있었다.
세완이 나형에게 “그런데 G여고, 9년 전 그때, 왜 한달 넘게 학교를 결석했던 거죠?”라고 묻지 않았다면 그들은 연인 관계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죽은 쌍둥이 동생과 세완은 일종의 원형질적인 유령입자가 되어 나형의 곁을 떠돈다. 뉴트리노, 뉴턴의 운동의 법칙 등 물리학 용어를 동원해 사랑의 실체에 접근해가는 서술방식은 이 소설의 또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나형은 세완이 교환교수 자격을 얻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다시 혼자가 된다. 나형이 작품 막바지에 이르러 만나게 되는 하얀 옷의 소녀는 결국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스물아홉이라는 이지러진 공간에 숨어든 또다른 자신의 도플갱어인 것이다. “수형 대신 한 소녀가 나를 빤히 올라다보며 서 있다. 누굴까. 이 여자아이는…….”(281쪽) 그건 우리 모두의 잃어버린 자화상이기도 하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