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 정국 혼돈] ‘개헌 통한 사법부 개혁 논의’ 왜 나오나… 대법·헌재, 한 법률 다른 해석 혼선

입력 2011-01-27 21:23

대법원과 헌재의 관계를 둘러싼 이명박 대통령의 ‘사법부 개헌’ 발언은 와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성식 국무총리실 공보실장은 27일 “지난 주례회동 후 이 대통령이 개헌 문제를 얘기하던 중 김황식 국무총리가 ‘법조계에서 대법원과 헌재의 역할에 대해서도 조정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얘기하자 이 대통령이 ‘아, 그런가’라고 했던 게 와전됐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여성이나 인권, 기후협약 등 시대변화를 반영한 개헌 문제를 얘기했지만 사법부 개헌 언급은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역할 재정립 문제는 이미 개헌의 화두로 떠올랐다. 양 기관의 해묵은 갈등을 어떤 식으로든 조정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1988년 헌재 설립 이후 대법원과 헌재의 기능과 역할이 중복된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두 기관이 서로 다른 법률해석을 내려 혼선이 빚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헌법은 대법원을 명실상부한 최고법원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헌법수호기관인 헌재의 위상도 대법원과 동등하다. 헌재는 대통령 탄핵심판, 신행정수도특별법, 호주제, 동성동본금혼법 등 정치·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맡으면서 영향력을 키웠다.

논의는 대법원과 헌재가 한 법률에 상반된 해석을 내리는 경우가 잦아 법적 안정성이 침해된다는 문제인식에서 시작됐다. 90년 법무사법 시행규칙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에 대법원이 반발하면서 시작된 대립은 헌재가 한정위헌을 내린 법률조항을 대법원이 합헌으로 해석하면서 격화됐다.

지난달 헌재의 전기통신기본법 위헌 결정과 대법원의 긴급조치1호 위헌 판단은 양측의 대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법원이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기각했으나 헌재는 해당 조항이 위헌이라고 했다. 헌재가 법원 결정을 뒤집은 셈이다. 대법원이 대통령 긴급조치 1호를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접 위헌 판단을 내리자 헌재는 “법률의 위헌심사권을 대법원이 침해했다”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묵은 갈등은 대법원과 헌재의 업무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헌재는 헌법소원, 위헌법률, 탄핵, 정당해산, 권한쟁의심판 등 5개 종류의 헌법재판만 담당한다. 명령·규칙의 위헌심사권은 대법원에 있다. 법원 판결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어서 헌재가 법원 판결을 취소할 수도 없다. 따라서 대법원과 헌재가 서로 상반된 해석을 하면 중재할 방법이 없다.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대법원과 헌재의 통합, 대법원의 명령·규칙 위헌심사권 헌재 이관, 헌법재판관 3명의 지명권을 대법원장에서 국회로 이관 등을 구상하고 있지만 두 기관이 쉽게 타협할 상황이 아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