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화련] 신혼의 명절
입력 2011-01-27 17:51
둘째가 장가를 가 내게도 며느리가 생겼다. 멀리 서울에 사는데다 아직 학생이어서 자주 못 만난다. 그나마 가장 길게 볼 수 있는 때가 명절이다.
새 식구가 생기고부터 명절이 더욱 명절다워졌다. 객지에 나간 자식이 하나에서 둘로 늘었으니 기다림도 그만큼 늘고 만남의 기쁨도 커졌다.
기쁜 만남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한다. 이불 빨래와 대청소를 하고 식단을 짠다. 된장찌개 같은 수수한 음식에, 손이 많이 가서 자주 해 먹지 못했던 것, 여기에 잔치음식이라 할 만한 것들을 더해 차림표를 만든다.
명절 식단을 나는 꽤 꼼꼼히 짜는 편이다. 연휴에 맞춰 2박3일이나 3박4일 동안의 매 끼니를 계획하고 표로 만든다. 그 계획표가 있으면 시장 볼 목록이 간단히 정리되고 나름대로 균형 잡힌 밥상을 차릴 수 있다. 깜빡 잊고 못 해 먹인 음식이 뒤늦게 생각나 속상할 일도 막을 수 있다. 먹는 것에 너무 신경 쓰는가 싶지만, 도시 생활에 지친 자식이 모처럼 집에 왔을 때 시골 어미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싹싹하고 귀여운 며느리가 있어 명절 분위기가 예전보다 환하다. 붙임성 있게 일손을 거드니 음식 장만이 한결 쉽고 편하다.
그래도 나는 며느리가 일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알고 있다. 살림하면서 학교 다니랴 아르바이트 하랴, 아무리 젊은 몸이라도 벅찰 것이다. 온 김에 푹 쉬었다 갔으면 좋겠다. 늦잠 자라고 기상 시간을 강제로 늦추고 나 혼자 고양이 걸음으로 아침을 준비한다.
내게 딸이 있다면 딸에게 할 것처럼 며느리를 대하리라 마음먹고 있다. 딸이 오랜만에 집에 왔다면 쉬게 해 주고 싶을 것이다. 며느리도 그렇게 쉬게 해 주고 싶다. 며느리를 좋아하는 나를 보고 콩깍지가 씌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신혼이다. 고부간에도 분명 신혼 기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혼이기에 무슨 짓을 해도 예쁘고, 우리 식구구나 생각하니 더 예쁘다.
물론 연애 기간도 거쳤다. 아들과 며느리가 연애한 9년 동안 나도 그 애와 사귀는 기분이었다. 오래 못 보면 보고 싶고 마주 보면 눈이 부셨다.
무엇이든 주고 싶어 꽃을 사 주고 간직했던 반지도 줬다. 지금도 여전히 좋은 것을 주고 싶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내가 특별히 아끼는 찻잔을 갖고 싶어 했을 때 잠깐 망설였다. 주더라도 집을 산 뒤 줘야 하지 않을까, 이사 다니다 깨뜨리면 어쩌나, 나중에 큰며느리 줄 게 없으면 어쩌나….
신혼이 끝나듯 이 마음도 변할지 모르겠다. 갈수록 며느리에게 일을 더 시키고 많이 기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기 전에, 내게 움직일 힘이 충분히 남아 있을 때, 시어머니의 사랑을 마음껏 주고 싶다. 명절에 내려오는 며느리에게 훈훈하고 즐거운 휴식을 주고 싶다.
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루에 찐 약밥을 좋아하는 며느리를 위해 오늘 시루를 꺼내 놓아야겠다.
이화련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