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생존 위협하는 ‘죽음의 그림자’… ‘바이러스 습격사건’

입력 2011-01-27 17:38


바이러스 습격사건/앨런 P 젤리코프·마이클 벨로모/알마

2003년 2월 10일. 세계보건기구(WHO) 베이징 지부는 ‘꽃의 도시’ 광둥성에서 100명 이상이 ‘이상한 전염병’에 감염됐고 불과 일주일 사이에 여러 명이 사망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중국 정부가 쉬쉬하는 사이 괴질은 세계에서 사람이 가장 붐비는 홍콩 한복판으로 퍼졌다. 광둥에서 괴질 환자를 돌봤던 호흡기질환 전문의 리우 지앤룬 박사가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홍콩의 최고급 호텔인 메트로폴호텔에 묵은 것이다. 가벼운 기침과 재채기를 하던 리우 박사는 시내관광을 하며 인파 속을 헤집고 다녔고, 이튿날 몸 상태가 심각해진 뒤에야 입원했다. 3일 뒤에는 리우 박사의 처남이 비슷한 증세로 입원했다. 이어 리우 박사와 같은 호텔에 묵었던 12명 관광객이 유사증세를 보였다. 연구 끝에 ‘사스(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라는 이름이 붙은 이 ‘신종 살인마’는 이후 급속도로 확산됐고 혈액의 산소운반 능력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리우 박사를 포함한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사스 바이러스는 환자들의 폐를 공격했고, 환자들은 물 속이 아닌 땅 위에서 익사하듯 숨을 거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스는 대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스가 사라졌다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대재앙을 준비하며 어디에선가 더 힘을 키우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방에서 불쑥불쑥 게릴라처럼 밀려드는 바이러스의 습격은 인간의 무지와 방심을 타고 당장이라도 처절한 대재앙을 안길 태세다. 최근 몇 십 년간 인류를 공격해온 신종 바이러스들을 유형별로 분석하고 이들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제시한 신간 ‘바이러스 습격사건’이 나왔다. 의사이자 물리학자로 바이러스 퇴치와 확산 방지에 노력해온 앨런 P 젤리코프와 법학박사이자 기술학자인 마이클 벨로모가 다소 까다로운 생물학적 개념을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설명하고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총 16장으로 구성된 책은 1999년 여름 미국 뉴욕을 공포로 몰아 간 웨스트나일바이러스 이야기부터 시작해 사스와 신놈브레바이러스, 콜레라, 식품 매개 질병, 레지오넬라증, 천연두, 크립토스포리디움증 등을 사례를 들어가며 흥미진진하게 다룬다. 바이러스가 포착된 시점부터 확산 과정과 의료진의 연구, 정부의 대처 등의 긴박한 과정들이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어 마치 한 편의 의학스릴러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1993년 뉴멕시코 서북부 포코너스에 사는 메릴 바흐라는 청년은 결혼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5월 첫째 주 바흐의 약혼녀는 갑자기 고열과 근육 통증, 기침 증상을 보였다. 갓 스무 살인 그녀는 결혼 준비 스트레스로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녀는 불과 나흘 뒤 사망했다. 약혼녀의 장례식을 치르기 며칠 전 바흐도 비슷한 감기 증상을 보였는데, 그도 얼마 못가 사망했다. 치료에 참여한 의료진은 당황했다. 건강한 사람을 단숨에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정체불명의 병원균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82∼83쪽. 아로요의 저주:신놈브레바이러스 편)

저자들은 이처럼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들이 꾸준히 등장하는데도 일반인들의 경각심은 놀라우리만치 적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그 이유를 인류가 2003년 사스 위기를 잘 넘기는 등 지난 100년간 공중보건을 위협할 만한 진정한 의미의 대재앙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어 자연에서 발생하는 세균의 위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 97년 발생한 조류독감은 가금류만 위협했지만 2∼3년 뒤 포유동물까지 세력을 확장했고, 2003년에는 급기야 인간의 목숨까지 빼앗았다. 2004년에는 44명이 조류독감에 감염됐는데 이중에 32명이 사망했다. 수세기 동안 열등한 동물에만 나타나던 바이러스가 최근 인간이 거주하는 도시와 농장을 습격한데 이어 인체에까지 공격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팔짱만 끼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자들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두 가지 비결을 제시한다. 우선 특정 질병이 최초로 발생된 이후 최대한 신속하게 질병이 확산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영국은 2001년 구제역 처리 과정에서 신속하게 문제의 농장을 확인하고 감염된 동물을 즉각 도축했다. 이 같은 발 빠른 대응으로 가축 피해를 60% 이상 줄였다. 이어 공중보건 전문가와 의료 전문가는 물론 동물과 곤충 전문가 등이 힘을 합쳐 ‘통합의료 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변종 바이러스를 매개로 인수(人獸)감염이 잇따라 벌어지는 심각한 상황인데 수의사와 의사가 함께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리다.

원서는 2006년에 출간됐지만 두 달 째 구제역 바이러스에 시달리면서도 초동 대처는커녕 바이러스 오염 원인이나 전파 경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송광자 옮김.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