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번! 자는데 깨워서 미안해”… 지리산 반달가슴곰 ‘전파발신기 교체’ 동행취재

입력 2011-01-27 18:11


24일 오전 7시40분부터 막힌 산길은 오후 1시가 넘어서야 열렸다. 전북 남원 쪽 지리산 자락에 쌓인 45㎜ 눈 때문이다. 국립공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정우진(35) 복원연구팀장은 다음 날 치를 ‘작전’을 준비 중이었다. 길이 열렸으니 산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작전을 펼칠 경남 산청 쪽엔 아직 눈이 오지 않았다.

‘RM-19-05-05’. 러시아 연해주(R)-수컷(M)-관리번호(19)-출생연도(2005년)-도입연도(2005년)가 조합된 이 공식명칭 대신 복원센터 식구들은 간단히 ‘19번’이라 부른다. 이 19번, 그러니까 2005년 연해주에서 건너와 지리산에 방사된 수컷 반달가슴곰 목에 걸려 있는 발신기를 교체하는 게 이번 작전의 목표다.

해발 1335m 눈밭

20마리. 환경부가 1998년 작심하고 전국 반달곰 개체수를 확인한 숫자였다. 그나마 지리산이 5마리로 가장 많았다. 50년 전만 해도 지리산에만 100마리 이상 있던 놈들이다. 인위적으로 개체수를 불려주지 않으면 멸종한다는 연구결과도 뒤따랐다.

2004년부터 우리나라 반달곰과 유전자가 같은 북한과 연해주 야생 반달곰을 수입해 지리산에 방사했다. 첫해 연해주에서 암수 3마리씩 들여왔고, 2005년 14마리(북한 8, 연해주 6), 2007년 6마리(연해주)가 왔다. 증식장과 자연에서 태어난 개체까지 더하면 모두 32마리. 이 중 17마리가 야생에서 살고 있고 4마리는 복원센터 증식장에서 사육 중이다. 나머지는 죽었다. 이제 복원사업의 목표는 반달곰 스스로 종족을 보전할 수 있는, 최소 50마리를 내년까지 확보하는 것이다.

이 일은 곰들에게 부착된 전파발신기에서 시작된다. 활동영역이 어디인지, 뭘 먹는지, 교미는 언제 하는지, 새끼는 몇 마리나 낳는지, 잘 적응하고 있는지 알려면 발신기는 필수다. 그래서 방사하는 곰마다 귀에 발신기를 부착했다. 네 살 넘은 녀석들은 목에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장치도 달았다. 발신기는 현 위치를 복원센터에 알려주고, GPS는 이동루트를 저장한다. 발신기 배터리 수명은 1년. 제때 갈지 못하면 ‘교신’이 끊긴다. 하루 30㎞까지 움직이는 곰은 겨울잠 잘 때가 발신기 교체의 적기다.

올 겨울 두 차례 발신기 교체 작전은 모두 성공이었다. 첫 번째였던 2번(RM-02-04-04)은 마취총을 맞았는데도 뛰어 달아나 정우진 팀장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이럴 때 쫓아가면 더 흥분하기 때문에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500m쯤 달아난 녀석은 마취약 기운이 올라오자 안전한 장소를 골라 드러누웠다. 지난주에 찾아간 18번은 기특하게도 바위굴 안에서 엉덩이를 입구 쪽에 두고 있었다. 마취총은 엉덩이에 쏘면 가장 효과가 좋다.

곰 위치는 매일 확인된다. 발신기에서 나오는 전파를 두 지점에서 측정해 교차점을 찍으면 정확한 좌표가 나온다. 19번은 지난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움직임이 없다.

2주 전 사전답사팀 추연규(34), 하연근(30) 연구원이 19번의 동면 지점을 찾았다. 해발 1335m에 있다. 다른 놈들보다 활동 고도가 높다. 장딴지까지 파묻히는 눈밭과 숲을 헤치고 19번이 자고 있는, ‘나무굴’(속이 비어 있는 고목을 그들은 이렇게 불렀다) 사진을 찍어왔다. 이들은 돌아오는 길목마다 붉은 인식표를 달아뒀다.

정우진 팀장은 답사팀이 찍어온 사진을 세밀히 살폈다. 나무굴 밑쪽에 출입문처럼 큼직한 구멍이 있어 여섯 살 19번이 들어가 누울 만했다. 반대편에 작은 구멍이 하나 더 있지만 그곳으로 도망치긴 어려워 보였다.

사전답사팀 두 명을 앞세운 정 팀장 일행이 25일 오전 9시 19번을 찾아 지리산 중산리 분소를 출발했다. 이 작전에 11명이 투입됐다.

방검복에 곰스프레이로 무장

출발한 지 20분쯤 지나 법정 등산로를 벗어나야 했다. 19번이 보내는 신호를 쫓아 길 없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곰 출현 주의’라고 적힌 경고 푯말을 수없이 지나쳐 1시간쯤 올랐을까. 잠시 걸음을 멈춘 정우진 팀장이 “지원조는 여기 남고, 나랑 선발대 4명만 올라가자”고 했다. 선발대 1조는 정동혁(34) 수의팀장과 김종백 연구원, 2조는 김보곤 권진만 연구원이다.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정동혁 팀장은 총에 장전만 하면 발사할 수 있도록 주사기에 마취제를 채우더니 얼지 않게 핫팩(보온주머니)으로 주사기를 감쌌다. 마취제는 주사기마다 최대 5㎖를 넣을 수 있다. 곰 체중이 100㎏ 이상이면 두 발을 쏴야 한다. 연발총이 아니어서 한 발 쏘고 다시 장전해야 하며, 그 사이 곰이 덤비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최루액이 든 ‘곰스프레이’(작은 소화기처럼 생긴 곰 퇴치용 장비)를 챙겼다.

다른 연구원들은 곰 공격에 대비해 방검복을 꺼내 입었다. 촘촘한 그물로 짜인 검정색 조끼. 칼날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옷인데 곰 발톱으로부터 연구원들을 지켜줄 것이다.

사전답사로 19번의 위치는 알고 있지만 달아날 경우에 대비해 추적용 안테나도 활짝 폈다. ‘지직’ 거리는 잡음을 뚫고 곰이 있는 방향에서 ‘뚜∼’ 하는 발신음이 여리게 포착됐다.

조용히 숲길을 헤쳐나가던 선발대가 멈춘 지점은 19번에게서 불과 30m 떨어진 곳. 이제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정우진 팀장이 나직이 속삭였다. “다시 말하지만 곰이 도망가면 퇴로를 열어줘요. 안 그러면 덤빌 테니까. 다치지 맙시다. 달아나면 또 잡으면 됩니다.”

지금부터 작전의 성패는 정동혁 팀장 손에 달려 있다. 조용히 접근해, 컴컴한 나무굴 안의 어둠을 뚫고, 곰의 어깨나 대퇴부처럼 근육 많은 부위에 마취 총 두 발을 명중시키는 것은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그의 몫이다. 이 순간을 위해 그는 평소에도 사격연습을 해 왔다.

19번의 동면지점에 도착한 정동혁 팀장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이밀어 나무굴 안을 들여다보는데… 이런, 곰과 눈이 마주쳤다. 움찔하며 몸을 뒤로 젖히다 눈밭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1시간 만에 마취서 깬 19번

“지원조 모두 올라오세요. 지원조 올라오세요.” 계획은 선발대가 마취까지 끝내면 지원조가 올라와 곰을 옮겨 발신기를 갈고, 건강검진을 하는 거였다.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정우진 팀장은 무전기로 급히 명령을 내린 뒤 서둘러 나무굴을 향해 뛰었다.

19번은 구멍 쪽을 바라보고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상태론 마취 총을 안전한 부위에 쏘기 어렵다. 약 기운이 퍼지기 전에 수의사에게 덤빌 수도 있다. 제대로 마취하려면 곰이 수의사를 등지고 있어야 한다.

“사다리를 만들죠.” 19번의 등 뒤에서 마취 총을 쏘려면 출입구 반대편 작은 구멍으로 겨냥해야 했고, 이 구멍은 땅에서 3m 높이에 있다. 그러니 사다리가 필요했다.

정우진 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연구원들은 작은 톱과 손도끼로 지리산 1335m 고지에서 5분 만에 뚝딱 사다리 하나를 만들어냈다.

이걸 딛고 올라선 정동혁 팀장이 마취 총을 발사했다. 재빨리 다시 장전해 한 발을 더 쏘니 그르렁대던 19번이 잠잠해진다. 나무 막대기로 곰을 툭툭 건드려본 그가 오케이 사인을 낸 건 이곳에 도착한 지 1시간 만이었다.

이후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9번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전기톱으로 나무굴을 잘라 출입구를 넓혔다. 젊은 연구원 대여섯이 달라붙어 곰을 끄집어 낸 뒤 5m쯤 떨어진 평지로 옮겼다. 마취에서 깰까봐 눈은 수건으로 가렸다. 말려들어가 기도를 막지 않도록 혀는 밖으로 쭉 빼놓았다.

발신기를 교체하고 몸에 난 상처를 소독했다. 체온을 재고 머리둘레, 신장, 이빨 크기, 몸무게 등도 측정한다. 모든 작업은 곰의 혀가 마르지 않도록 수시로 식염수를 혀에 뿌려주며,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핫팩과 담요로 가슴을 덮어준 채 진행됐다. 1시간이 지나자 19번의 혀가 꿈틀했다.

“서둘러.”

수술용 장갑을 끼고 상처를 소독하던 정동혁 팀장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장비 정리를 마치자 마취에서 깨는 약을 19번에게 주사했다. 혀가 다시 한번 꿈틀하더니 이내 다리를 든다.

“모두 내려가. 빨리.”

정우진 팀장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연구원들이 하산을 시작했다. 말이 하산이지 눈 덮인 산비탈을 엉덩이로 미끄러지며 마취 풀린 곰에게서 도망치는 거다. 19번은 이내 네 발로 일어섰다. 멍하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지리산 곰들은 3월 말이나 4월 초에 깨어나 활동을 재개한다. 19번도 다른 안식처를 찾아 그때까지 다시 겨울잠을 잘 것이다.

복원사업은 2009년 큰 고비를 넘겼다. 2005년 북한에서 들여온 8번이 새끼를 낳았다. 10번과 18번도 곧이어 2세를 낳았다. 야생에 완전히 적응했다는 신호였다. 야생에서 태어난 새끼 4마리 중 2마리는 죽었다. 남은 2마리 중 하나는 아직 어미 곰과 같이 다니는 새끼여서 발신기를 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8번의 새끼는 미처 발신기를 부착하기 전에 독립해버렸다.

곰에게 발신기를 다는 건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개체수가 불어나면 일일이 찾아가 이를 교체하고 몸 상태 챙겨주는 일이 더욱 힘들어진다. 두 정 팀장이 그 일을 버겁게 느낄 때쯤, 지리산 반달곰 복원사업의 긴 여정은 종착역에 다가설 것이다. 올해로 방사 8년째다.

지리산=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