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알트루사 대표 문은희 박사 "오빠 문익환 목사 때문에 여성 위해 헌신"
입력 2011-01-27 15:32
[미션라이프] 서울 계동의 북촌한옥마을 막다른 골목길. 39개의 계단을 오르면 고풍스런 한옥이 나온다. 대문 앞에 (사)한국알트루사란 입간판이 놓여있다. 집에서는 북촌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나무대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아담한 마당이 반긴다. 방안에 들어서자 벽에 붙은 ‘마음이 건강한 여성들이 만드는 착한 사회’란 슬로건이 눈에 띈다. 그 앞에는 맘씨 좋은 할머니가 조끼를 뜨고 있었다. 할머니는 한국알트루사 대표이며 여성상담소장인 문은희(72) 박사다. 기자는 문 박사가 여성 해방의 투사 모습을 띄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지난 25일 막상 만나 보니 천상 여성이고 어머니이고 할머니였다.
“회원 아기에게 줄 조끼를 뜨고 있어요. 막 태어났거나 돌이 된 아기에게 선물하려고요.”
그는 아픈 몸을 치유하는 무의촌 의사가 되고 싶어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주사 바늘 하나 못찌르는’ 자신을 발견하고 교육·심리학 분야로 진로를 틀었다.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학습심리를 전공했다. 미국 예일대에서 목회상담 석사과정을 마치고 연대에서 상담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화려한 이력임에도 서울에서는 강단에 서보지도 못했다. 그는 전주대에서 고작 2년간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화려한 학력에도 불구하고 중앙 무대에서 강의를 하지 못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기독신앙인으로 민족지도자로 평생을 살았던 문재린 목사의 딸이며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펼쳤던 문익환 문동환 목사의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서슬 시퍼런 시절, 항상 누군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강단에 설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췄음에도 기회는 오지 않았다. 문 박사의 남편은 한국 사회학계의 원로인 박영신 전 연세대 교수. 대학원에서 만나 결혼했다. 함께 유학도 다녀왔다.
“아마 박 선생이 나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더 큰 꿈도 꾸었을 거예요. 저와 결혼했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보다 좋은 게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런 이유로 오빠 문익환 목사는 늘 동생에게 미안해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 박사는 지금의 자신이 있게 된 것은 오빠 때문이었다며 오히려 감사했다.
“제가 정말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을 거예요. 제가 여성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게 해준 오빠에게 감사해요.”
문 박사는 쉰이 넘은 나이에 다시 영국 글래스고대에서 우울증을 주제로 논문을 써 심리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몸의 치유를 목적으로 시작한 공부가 마음의 치유로 꽃핀 셈이다. 그는 한국여성과 서양 여성의 우울증을 비교·연구하는 과정에서 ‘포함단위’라는 한국인의 독특한 심리구조를 찾아내 ‘포함이론’을 정립했다. 포함이론은 개인의 행동과 사고 단위를 가진 서양 여성들과 달리 한국의 여성, 특히 어머니들은 자신이 포함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맞춰 살아간다는 의미다. 그는 평생의 공부를 바탕으로 1999년 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를 개소해 20년간 꾸려왔다. 문 박사는 여성들의 ‘마음의 건강’과 ‘변화’에 중점을 두고 상담에 임해 왔다. 상담을 통해 실제적으로 삶이 변한 내담자들을 보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기쁨이다. 문 박사는 집단상담을 위해 쓴 글들을 모아 심리치유서 ‘눈치보는 한국여자’(도서출판 니)도 출간했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이웃사랑을 상담을 통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
“내담자를 상담하면서 상담료를 받은 적이 없어요. 가난한 이들에게도 상담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길 바라기 때문이지요.”
알트루사는 전문직 여성들의 자원봉사단체. 1917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한국알트루사는 83년 창립됐고 문 박사는 86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알트루사에서 말하는 전문직은 자기 분야에서 오래 몸담고 능통한 모든 이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오랫동안 일해 온 미용사든, 주부, 박사든 모두가 전문직 여성이다. 한국알트루사에서는 정신건강 사회운동을 주로 펼친다. 수많은 내담자가 상담을 통해 변화를 경험한다. 주부, 직장인, 학생 등 여성들의 자원봉사활동과 100% 회원들의 회비로 모든 사업이 운영된다.
한국알트루사에서는 성인을 대상으로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을 진행하는 여성상담소를 운영한다. 또한 상담·종교공부방, 독서모임·뜨개모임·노래교실, 청소년과 여성들이 결연해 보살피는 큰언니운동, 계간지 ‘니’ 발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열린학교 ‘재미있는학교’도 운영하고 목욕봉사, 뜨개봉사 등도 한다.
문 박사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인 ‘이웃사랑’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며 “그러나 변화는 하나님이 주관 하시는 것이므로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글=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 사진=신웅수 대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