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영재] 구제역 난리에 한가한 서열 싸움

입력 2011-01-26 21:26

구제역은 남의 일인가.

경남도내 시장과 군수들이 26일 한자리에 모여 방역 대책보다는 자리 다툼에 열중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24일 경남 김해에서 구제역이 발병하자 방역 대책을 협의하기 위해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시장·군수 정책협의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단체장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행정 서열’ 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구제역은 뒷전이었다.

김맹곤 김해시장이 먼저 말문을 텄다. 인사말을 통해 “김해는 지난해 전국에서 15번째로 50만명을 돌파한 대도시”라며 “행정 서열을 현실성 있게 바꿔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도내 18개 시·군 중 김해는 인구 100만명인 창원 다음으로 두 번째라는 게 김 시장의 주장이다. 현재 김해시의 서열은 5번째다.

이어 나동연 양산시장도 한 몫 거들었다. 나 시장은 “양산이 8개 시 가운데 마지막인데, 인구가 27만명인 점에 비춰 서열 조정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현재 서열 2위와 3위인 이창희 진주시장과 김동진 통영시장 등이 즉각 반발했다. 이 시장은 “둘째 아들이 키가 작다고 해서 셋째 아들이 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김 시장은 “국제적으로 봐도 대륙순으로 하거나 ABC 순서대로 하고 있다”고 인구에 따른 서열 조정에 반대했다.

인구가 3만명을 조금 넘는 의령군의 김채용 군수는 “인구 등 순서대로 하면 우리 군이 제일 꼴찌인데…”라며 걱정했다.

김두관 경남지사가 “시장·군수들간 의견차가 있어 좀 더 시간을 갖고 천천히 검토해 보자”고 중재하면서 논란은 겨우 봉합됐다.

행정 서열은 행정기관 주관 행사, 시장·군수 의전, 공문 시달, 통계 등의 행정 업무에 활용된다.

관례에 따라 사용된 ‘서열’을 ‘현실에 맞게 바꾸자’고 요구한 쪽이나 ‘현행을 유지해야 한다’고 항변한 쪽이나 나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많은 일선 공무원들이 한파속에서 구제역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자리싸움’을 잠시 뒤로 미루는 지혜가 아쉽다.

창원=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