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검은돈 피난처’ 오명 확실히 벗는다… 자금세탁 차단· 의심 거래 보고 의무화 법안 2월 시행
입력 2011-01-26 21:29
스위스는 전 세계 독재자들의 검은돈 은닉처로 각광받았다. ‘고객 비밀은 무덤까지 갖고 간다’는 은행들의 철저한 고객 보호주의 덕분이었다. 그런 스위스 정부가 이제 국제적 오명을 불식시키기 위한 새 금융법을 마련해 다음 달부터 시행한다.
스위스 금융권에 몰아친 이런 개혁 바람에 독재자들은 떨게 됐고, 부정 축재한 돈을 환수하려는 각국 정부와 시민단체의 노력은 탄력을 받게 됐다.
◇비밀주의 누그러졌다=새로 시행되는 법안은 자금세탁을 어렵게 하고, 의심스런 거래를 당국에 보고하는 걸 의무화했다. 또 은행들이 고객 정보를 보다 구체화하도록 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26일 보도했다. 아울러 부정한 돈의 해당국 환수의 길을 텄으며, 회수된 돈은 전체 국민들을 위해 쓰이게 하거나 국제기구나 시민단체 등에 기부하게 명문화했다.
이번 법은 스위스 정부가 자국 은행들이 비밀주의로 독재자들의 생명 유지를 돕고 있다는 국제적 지탄을 받음에 따라 수년 전부터 이미지 개선에 주력해 온 결과다.
스위스 연방검찰은 최근 민중봉기로 축출된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전 대통령과 측근들의 스위스 자산을 동결했다. 이어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퇴진을 거부하는 로랑 그바그보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과거 독재자들의 검은 자산 환수에 탄력=현재 스위스에 상당한 자산을 예치한 과거의 정치지도자는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 나이지리아의 사니 아바차 전 대통령, 자이르의 모부투 세세 세코 전 대통령, 멕시코의 카를로스 살리나스 전 대통령 등이다.
이번 스위스 개혁법으로 독재자 재산의 몰수 길이 열리면서 국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부정한 돈의 환수 노력도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시민감시기구인 진실한글로벌금융 등 국제단체를 중심으로 부정부패한 정권의 은닉 자금을 추적하고 회수하려는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해당 국가에 검은돈이 실제 되돌려지기까지는 현실적 장벽이 많다. 새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구정권과 연루된 사례가 많고, 새 정부도 정권 기반이 흔들릴 걸 우려해 과거사 청산을 꺼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다니엘 테레스라프 지배구조개선바젤연구소장은 “인도 브라질 등에 신흥 조세 피난처가 생겨나는 추세여서 자금 추적도 쉽지 않다”며 국제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독재자들의 검은돈 규모는 1조4000억 달러(2009년 기준)에 달하지만 회수된 돈은 미국 스위스 등에서 50억 달러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