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맥스, 매출 1조 ‘셋톱박스의 기적’

입력 2011-01-26 18:51


‘셋톱박스’로 유명한 휴맥스가 벤처 1세대 업체로는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셋톱박스라는 단일품목으로, 매출의 98%를 해외시장에서, 인수·합병(M&A) 없이 일군 성과다. 외환위기, IT 거품 붕괴 등 부침이 심했던 국내 벤처산업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성과라는 게 업계 반응이다.

휴맥스는 2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매출 1조52억원, 영업이익 75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국내 벤처산업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문을 열었던 업체 가운데 연매출 1조원을 넘긴 건 처음이다.

변대규(사진) 사장은 매출 1조원을 달성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기업가적 활동’과 ‘경영가적 활동’의 조화를 꼽았다. 1989년 서울대 대학원 제어계측공학과 선후배 6명이 의기투합해 세운 휴맥스는 아날로그 방송이 디지털 방송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셋톱박스라는 새로운 사업기회를 포착했다. 창업 첫해 1억3000만원이었던 매출은 1995년 120억원, 2000년 1426억, 2005년 6495억, 2009년 8027억원으로 20년 만에 6000배가 넘게 증가했다.

하지만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효율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변 사장은 업무의 시스템화가 안 되면 더 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4년 전부터 내부 조직화, 운영 혁신에 공을 들였다. 변 사장은 “지난 20년간 새로운 사업기회를 포착하는 기업가적 활동, 조직 내부를 다듬는 경영가적 활동 모두 성공적으로 진행해 작지만 강한 회사가 됐다”며 “이제 다시 기업가적 활동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휴맥스는 현재 유럽 최대 방송시장인 독일을 비롯해 영국, 중동 등에서 셋톱박스 시장점유율 1위 업체다. 15개국에 영업법인이 있고 전 세계 80여개국에 셋톱박스를 판매하고 있다.

이날 변 사장이 밝힌 신사업 전략은 두 가지다. 미국 케이블 시장 진출과 차량용 인포테인먼트(CI) 사업 진출이다. 미국 케이블 시장은 규모가 큰 만큼 진입이 어렵다. 변 사장은 “최근 미국 케이블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업체의 영향력이 조금씩 흔들리고 IT기술과 방송기술이 융합되면서 시장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며 “지금이 시장 진입의 적기”라고 말했다. 휴맥스는 지난해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 알티캐스트의 지분 32.91%를 인수하는 등 케이블 시장 진입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CI 사업과 관련해선 올해 7월 지상파 방송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있는 일본에 차량용 셋톱박스와 TV를 출시할 계획이다. 지난해엔 GM, 르노닛산 등에 차량용 오디오를 공급하고 있는 대우아이에스의 지분 16.67%를 인수했다.

변 사장은 “2015년까지 디지털 셋톱박스 사업에서 1조8000억원, CI 분야에서 5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해 연매출 2조3000억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