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프롤로그] 리더의 자리는 앞이 아니라 뒤

입력 2011-01-26 18:16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별세 소식은 늙으신 고모가 돌아가신 것처럼 마음이 아픕니다. 어느 봄날 부모님 모시고 불쑥 찾았던 작은 포구의 고모집. 마실서 돌아온 양주가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를 맞았습니다. 고모부는 그 길로 굴비 사러 갔던 기억. 마당 화분에 할미꽃 한 송이가 유난했던 날이었습니다.

박완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고모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서울 서대문 영천 산동네를 배경으로 한 6·25 직후 사회상을 담은 작품 무대는 지금은 아파트 병풍이 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피란살이하던 곳입니다. 박 선생과 고모님, 두 분 다 해사합니다.

별세 직후 조간신문과 방송, 인터넷매체의 관련 기사를 접하면서 왠지 모를 막막함이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가톨릭 신자였던 작가의 영성이 각박한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적시는 내용들이었지요. 이해인 수녀나 유명 작가들의 추모사 역시 감동을 더해 줍니다. 교인 한 사람의 삶이 일반 사람에게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막막함이란 개신교 리더들의 허장성세 때문입니다. 성세(聲勢)를 넘어 사고나 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한 바람입니다.

개신교 연합기관과 일부 교단 총회,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교회의 일부 목회자 등이 권력 싸움과 추문으로 얼굴을 못 들게 합니다. 케이블 방송에선 검증도 안 된 설교자들이 보편적 가치를 무시한 채 개신교 대변자인 양 앞뒤 안 맞는 설교로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오늘의 개신교 위기는 그 첫 번째가 리더에 있습니다. 개신교에도 이태석 신부와 같은 삶을 사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박완서 선생과 같은 평신도가 왜 없겠습니까. 그들의 온유함을 챙겨야 한다고 봅니다. 리더는 그들 앞이 아니라 뒤에 있어야 합니다.

전정희 종교기획부장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