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내 스승이고 친구, 연인 그리고 아이들”… 공지영, ‘문학사상’에 문학적 자서전 발표
입력 2011-01-26 18:00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공지영(48)씨가 월간 ‘문학사상’ 2월호에 ‘문학적 자서전’을 게재해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나의 치유자, 나의 연인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란 제목의 글에서 대학 시절 친구들과 돼지갈비를 먹기 위해 여기 저기 현상금이 있는 매체에 소설을 응모해 돈을 벌었으며, 첫 이혼 이후 글이 써지지 않을 정도로 강박에 시달리다 신경정신과를 찾아간 이야기 등을 특유의 담백한 어조로 들려주고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대학 졸업 후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에 감금되었을 때다. “책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그 겨울. 먼지가 풀썩이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추위에 이가 딱딱 부딪치게 떨며 스물넷의 여자가 혼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일주일을 보낸다. 그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소설이라는 단어가, 최루탄과 경제학과, 끌려간 친구와 변사체로 발견된 친구와 고문 후유증으로 미쳐버린 선배의 괴로운 형상을 뚫고 심연에서 솟아나와 찬 대기를 접하고는 머리를 부르르 떠는 푸른 용처럼 솟구쳐 오른다.”
그런가하면 문학적 슬럼프에 빠져 7년 동안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던 고뇌의 시간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털어놓고 있다. “좋은 학교, 좋은 집안, 그럴듯한 외모, 젊은 여성, 이혼녀, 베스트셀러 작가, 이 반짝이는 모조구슬 같은 딱지들은 무대의상처럼 화려하고 그 안에서 내 영혼은 썩은 내를 풍기며 곪아가고 있었다. 나는 결국 글마저 놓아버린다. 7년의 시간이 속수무책으로 흘러간다.”
세 번의 이혼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어 그를 따라다녔고 성(姓)이 다른 세 자녀를 혼자 부양해야하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공포와 강박에 시달렸다는 대목에서는 소설가이기 전, 지극한 모성을 지닌 인간 공지영의 또 다른 모습이 읽혀진다.
“세 아이, 세 번의 이혼. 쇠사슬처럼 무거운 생의 낙인들이 치렁치렁 내가 가는 곳마다 철렁거렸다. 아이들만 없으면 사막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혹은 북극, 혹은 아프리카. 나는 사슬을 끌고 천천히 말도 안 되는 문장을 채워 넣었다. 나는 무능한 이혼 여성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장편 ‘봉순이 언니’(1998) 이후 ‘별들의 들판’(2004)을 탈고할 때까지의 긴 공백기 동안 문단 사람들은 그를 두고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원고지 100장을 쓰는 데 6개월이 걸릴 정도로 손이 풀리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무조건 책상에 앉았고 무엇이라도 써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최소한 불행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기에 이른다. “글은 내 소녀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내 스승이고 내 친구이며 고해신부이고 치유자이며 내 연인, 그리고 내 아이들이다.”
한편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인 공씨의 단편 ‘맨발로 글목을 돌다’에 대해 문학평론가 방민호씨는 폐결핵과 가난에 시달렸고 결혼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이상(李箱)의 말년에 빚대 “이상이 어떤 문학을 해야 하느냐를 고민하면서 현해탄을 건넜듯 공지영씨 역시 시대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