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총-NCCK, 일치 깃발은 어디가고… 길 잃은 한국교회
입력 2011-01-26 20:50
민족 복음화와 보수 복음주의의 상징이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요즘 이상하다. 인권과 통일운동, 민주화와 진보 기독교의 코드로 인식되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또한 최근 몇년간 위상이 추락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기총과 NCCK 입장에서는 다소 언짢게 들릴 수 있겠지만 지금의 한기총과 NCCK는 열정과 야성을 잃어버린 ‘늙은 사자’와 같다는 게 교계의 중론이다. 마치 정점을 목전에 두고 내려갈 일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두 기관이 어렵사리 합의를 도출해 2006년부터 공동 주최해 온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마저 표류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올해의 주제 해설 등 예전(禮典) 형식과 내용이 어느 정도 완성됐어야 한다. 하지만 올해는 두 기관 모두 “(규모를) 작게 하겠다”는 원론만 세웠을 뿐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복음의 정수에 집착하라”=지난 20일 한기총 대표회장 당선자 길자연 목사의 인준을 놓고 극한 대립을 벌이던 한기총 정기총회를 지켜본 크리스천이라면 마음이 착잡했을 것이다. 불복의 문화에 익숙한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 과연 옳은 것인가, 무엇을 위한 갈등인가….
길 목사를 반대한 인사들은 21일 ‘(가칭) 한기총 개혁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면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어 이광선 목사는 24일 문원순 목사, 김동근 장로와 소임원회를 갖고 길 목사 인준이 정상적인 정회 선언 이후 이뤄졌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27일 오후 2시 정기총회 속회 의사를 밝혔다. 이에 길 목사 지지자들은 이 목사가 기한도 말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정회를 선언하고는 신일교회로 되돌아갔기 때문에 한기총 정관에 따른 대표회장 유고 상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모 교단 총무가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양심고백을 하고 소속 교단으로부터 총무직을 박탈당하는 사건이 이어졌다. 모종의 시나리오 속에 이번 일이 벌어진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되기도 했다. 이 목사의 최종 입장이 길 목사에게 전달되고 양측이 물밑교섭까지 벌였지만 접점을 찾는 게 여의치 않았다.
한기총 명예회장단은 26일 긴급 회동을 통해 지난 총회가 적법했다고 결의했으며 두 전·현직 대표회장이 화해 무드를 조성할 것을 주문했다. 한기총은 28일 임원회를 개최, 일부 목회자에 대해 소속 교단에 상응한 조치를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할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리는 대표회장 이·취임 예배 때 이 목사가 불참할 경우 취임 예배로 드릴 예정이다.
이번 사태가 마치 ‘마주 달리는 기차’와 같아 보일 수 있지만 한기총이 향후 사회성과 공공성을 담보하며 ‘한국교회형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장이 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는 희망도 나오고 있다. 한기총 대표회장과 NCCK 회장을 지낸 박종순 충신교회 원로목사는 “바다에 파도가 있듯이 연합사역은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라며 “66개 회원 교단과 19개 단체가 지혜를 모으면 원래의 한기총 자정능력이 발휘될 것”이라고 했다. 박 목사는 “한기총은 연합과 일치, 한국교회의 버팀목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할 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사심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미쳐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회기 한기총 기획단장을 지낸 조병호 성경통독원장은 “한기총은 NCCK와 더불어 올 한해 정체성과 역사성을 되씹고 새로운 어젠다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부침을 겪을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종국적으로 한국교회가 더 이상 내부 문제뿐 아니라 민족,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문제 등에 대해 좀 더 천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 원장은 “약점도 있고 다툼도 있을 수 있지만 한기총은 NCCK와 함께 한국교회의 두 기둥”이라며 “구성원 간 특성을 존중하고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아니라 ‘함께 더불어 정신’으로 새로운 연합과 일치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고 했다.
양병희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도 “한기총이 특정 지도부의 단순 직감에 의존하지 말고 명망에 걸맞은 행동과 고도의 정치력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귀를 열어 신앙의 야성을 회복하라”=지난해 말 김영주 총무가 새로 취임한 NCCK는 아직 내부 조직 개편 중이다. 10∼24일 12개 위원회 위원장이 2년 만에 전원 교체된 데 이어 28일 신임 회장이 취임할 예정이다. 전체 조직이 새 출발을 하는 시점인 만큼 의욕이 넘치지만 워낙 교계 안팎의 이슈들이 난맥상을 이루고 있어 행로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에큐메니컬 원로들의 NCCK와 김영주 총무에 대한 주문은 대체로 일치했다. ‘현장’에 밀착해 끈질기게 대화하며 일해 나가라는 것. 김상근 목사(6·15공동선언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는 “NCCK가 지향해야 할 바는 여전히 정의·평화·창조질서 보존으로 축약할 수 있다”며 “이 과제를 어떻게 회원교단들 안에 수용토록 해 나갈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NCCK는 WCC에 비해 한 국가의 현장 안에 있기 때문에 뚜렷한 색깔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한국 사회의 여러 현장에 밀착해 그 속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김 총무에게는 “반대하는 사람일수록 끈질기게 대화해 결국 그 일을 주도하게 만든 1980년대의 김관석 전 총무를 벤치마킹하라”고 조언했다.
안재웅 전 아시아기독교협의회 총무는 NCCK 운영에 있어서는 창조적 경영자, 한국 교계와 NGO, 국제 관계 등에서는 혁신적 선구자, 회원 및 비회원 교단의 지도자들에게는 합리적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NCCK는 북한 그리스도인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남북 관계가 대화와 화해, 협력 관계로 전환되도록 기도하고 발언하며 행동해야 한다”면서 “특히 북한돕기 운동이 전 교회 차원에서 재개되도록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WCC 총회 준비와 관련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나아가 세계 평화를 신학적으로 모색하고 신앙으로 결단하고 실천하는 ‘평화 대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를 위해 북한 기독교인들이 WCC 총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중국과 러시아, 우리 정부 당국과 협의하고 설득할 책임이 김 총무에게 있다”고 덧붙였다.
함태경 황세원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