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채 스무 살이 안 된 ‘꽃봉오리 아이들’
입력 2011-01-26 17:40
새해가 밝은 지도 한 달이 다 되어 가네요.
해가 바뀌면서 품었던 소망은 많이 이루셨는지요. 저도 오랫동안 꾸었던 꿈의 한 자락을 조심스럽게 펼쳐 놓았습니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사이버 학점은행에 등록을 하였지요. 약국 일을 하면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주저하였으나 시간이 더 지나면 어려워질 거라는 생각에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미아리 집창촌에서 약국을 시작한 때가 1994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었고, 성매매여성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되어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잡았습니다.
약국 일을 하면서 저는 너무 어린 여성들을 많이 만나게 됐고 그 충격 또한 적잖았습니다. 아직 여성이라 부를 수도 없는, 채 스무 살이 안 된 꽃봉오리 같은 그런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짙은 화장과 속살이 다 보이는 야한 옷차림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했지만 일이 끝나고 민얼굴을 대하면 딸 같고 조카 같은 앳된 아이들이었답니다.
한 아이가 머뭇거리면서 들어와 피임약 하나를 달라고 했지요. “이 약을 오늘 먹으면 오늘 피임이 되는 거냐”고 묻는 아이의 눈매는 바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화장조차 깨끗이 지우지 못한 아이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고단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흔들리는 아이의 맑은 눈동자는 제 가슴에 작은 샘물 하나를 흐르게 하였습니다.
아이를 붙잡고 임신과 생리 그리고 올바른 피임법에 대하여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갓 고등학교를 마친 아이는 여성으로서 자신의 몸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알지 못하였지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그 몸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고민도 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 아이를 어찌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였습니다.
삼십대 중반이었던 저는 마음속에 분기가 가득 차 있었기에 그런 막막한 상황을 만나게 되면 솟아오르는 분노를 추스르지 못하였답니다. 아이에겐 화를 낼 수 없었습니다. 여자아이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조차 하지 않는 학교를 원망할 수도 없었지요.
그 아이는 학교를 제대로 다닌 기억이 없다고 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이곳저곳 이사를 다녀야 했습니다. 삼남매의 둘째딸이었던 그 아이와 언니, 동생 그리고 엄마 아버지 이렇게 온 식구가 함께 모여 오순도순 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는 겁니다. 따스한 가정 안에서 자랐으면 참으로 곱게 예쁘게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헤쳐나 갈 빛나는 스무살이었을 텐데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그 아이에게 참으로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동안 그런 아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교를 다닐 수 없어서 집을 나온 아이, 멋있어 보여 엄마를 졸라 막무가내로 산 휴대전화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 무서워서 집을 나온 아이, 브랜드 옷을 사 입고 폼을 잡고 싶은데 옷을 살 돈이 없어서 집을 나온 아이, 남자친구 사귀는 걸 부모가 너무 싫어해서 집을 나온 아이.
하나님께서는 어쩌라고 제게 그런 아이들을 보내주셨던 걸까요. 저며 오는 가슴 때문에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숙제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저와 함께 답도 풀고 계심을 알게 되었지요.
아이들을 어떻게 품어야 하는지를 제게 일러 주신 겁니다. “무조건 안아라”였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야단을 많이 맞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그저 가끔은 자신을 무조건 믿어주고 안아줄 그 누군가가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제게 일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듯이, 집을 나간 아들이 들어온다고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처럼 그렇게 온 정성을 품어 섬기는 그런 깊은 사랑을 우리들이 나누길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계속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미선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