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탁석산의 스포츠 이야기] 이대호 연봉 협상의 교훈
입력 2011-01-26 17:42
LG 투수 박명환은 올 겨울이 유난히 추웠을 것이다. 연봉이 5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대폭 삭감됐기 때문이다. 4승6패 방어율 6.63에 소화 이닝 수가 76에 그치고 말았으니 뭐 달리 할 말도 없었을 것이다. 성적대로 평가한 것이고 평가대로 연봉 협상이 끝난 것이다. 그런데 박명환은 추웠겠지만 롯데 이대호는 열불이 나서 속이 탔을 것이다. 시즌 타격 7관왕에 9게임 연속 홈런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건만 연봉 조정에서 패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3억9000만원에서 7억원으로 인상을 원했지만 6억3000만원으로 조정이 끝났기에 패배자가 되고 말았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 나는 이대호가 한 10억원은 받을 줄 알았다. 타격 3관왕만 해도 100% 연봉 상승은 되지 않겠나 생각했고, 신문과 방송의 노출 빈도와 강도를 생각하면 롯데 광고 효과가 대단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박명환처럼 9분의 1로 깎일 수 있다면 9배로 오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패했을까. 자료가 부실했기 때문이란다. 이대호는 신문에 보도된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고나 할까. 이대호는 7억원의 연봉을 받을 자격은 충분하나 입증할 자료가 부족했다고 조정위원들은 말한다.
여기에서 궁금한 것이 있다. 연봉 고과표에 이대호가 프로야구에 미치는 영향이란 평가항목이 있느냐는 것이다. 적시타, 역전타, 실책 등은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이대호가 지난 한 해 프로야구 전체의 경제적 효과에 미친 영향이 과연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없다면 공정한 평가표가 아닐 것이다. 이대호를 보러 오는 관중의 수는 물론 이대호가 9게임 연속 홈런을 날림으로써 산출한 경제적 효과도 분명히 고과에 반영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있다면 과연 그 가치가 어떻게 평가됐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12월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지난 시즌 한국 프로야구의 경제적 효과가 1조1837억원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믿을 만한 자료라고 여긴다면 이 어마어마한 금액에서 이대호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1%는 되지 않을까. 1%라면 도대체 금액이 얼마인가. 설마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초의 타격 7관왕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호 선풍을 벌써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롯데 구단과 조정위원회는 이에 대해 어떤 평가를 했는지 알고 싶다. 즉 구체적인 수치를 알고 싶은 것이다. 이대호는 이 점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개인이, 그것도 시즌 내내 경기에만 몰두했던 선수가 계산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수치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프로축구는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그런데 야구는 할 수 없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두 종목 모두 한국의 프로 스포츠 아닌가. 선수는 경기에만 최선을 다하고 협상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