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셋집살이

입력 2011-01-26 17:40

“흔한 전세도 아니고 겨우 월세로 산다니까요. 완전 사기결혼이라고요.”

1980년대 중반 일본 체류 중 만났던 한 한국여성의 분노 섞인 신세한탄이었다. 국제결혼 알선업자를 통해 일본에 시집왔는데 남편·시부모와는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무엇보다 시부모가 교회 가는 것을 반대해 갈등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예 파경, 이혼 소송이 벌어지던 즈음이었다.

일본에 시집온 한국여성들을 지원하는 한 기독단체를 거들던 중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만나자마자 그렇게 사기결혼을 호소했다. 결혼 전에 듣던 남편의 경제사정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경제대국 일본에 시집오면 모든 게 넉넉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아니더라는 얘기다. 그중 하나가 월세였다. 일본엔 전세 자체가 없는데도….

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다. 시중에 돈이 귀하여 금리가 아주 높던 시절의 유제(遺制)다. 집주인은 전세금을 받아 사업자금으로 쓰거나 고금리로 굴렸다. 세입자에겐 전세금, 특히 계약 갱신 때마다 오르는 전세금이 큰 부담이었지만 나름 그것은 강제저축 역할을 했다.

세입자들은 늘어나는 전세금을 충당하기 위해 열심히 저축해 조금씩 전셋집을 키워 갔다. 내 집을 마련할 때까지. 전세제도가 서민 자산증식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자금 품귀시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제대란의 한 원인이 그것이다. 돈은 넘치고 금리는 낮으니 집주인들은 전세금 받아 융통하기보다 반(半)전세, 월세를 선호하면서 전세 물량이 줄고 있다.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그마저도 구하기가 어려우니 셋집살이 하는 이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신랑의 평균 결혼비용은 8078만원, 신부는 2936만원이다. 혼수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신랑 비용이 신부보다 3배 쯤 많은 것은 전셋집 비용 때문이다. 전세대란에 셋집을 못 구하는 남자는 결혼조차 하기 어렵다.

남은 방법은 셋집 공급 확대뿐이다. 기존 전세입자를 위해서는 공공주택정책의 초점을 임대주택에 맞추는 한편 셋집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젊은 층을 위해서는 월세 위주의 주택 공급체계도 정착시켜야 한다.

머잖아 월세가 셋집 시장을 장악할 모양인데 여기엔 전제가 필요하다. 모든 월세 수입자에 대한 철저한 과세, 과세액이 월세에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 마련이다. 셋집살이도 서러운데 세금 부담은 막아야 할 게 아닌가.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