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이강렬] 이제는 정치인이 고통을 당할 차례
입력 2011-01-26 17:36
“우리가 먹은 밥값을 후손들이 열배로 치르게 하는 선심성 포퓰리즘이 문제다”
한국정치 색깔은 눈 녹아 질척거리는 겨울 아스팔트 보도의 칙칙한 회색이다. 신문과 방송에 매일 보도되는 정치뉴스를 접하면서 연탄재와 녹은 눈이 범벅되어 질척거리는 달동네 비탈길 풍경을 보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정치에는 밝은 소식, 희망의 뉴스가 없다. 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세계 경제대국 대한민국 정치는 ‘희망 발전소’가 아닌 ‘갈등 공작소’가 된 지 오래다. 정치에 신물 난 신문 독자들은 정치뉴스 면을 건너뛰고, TV 뉴스 시청자들은 정치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고 한다.
‘아니면 말고 식’ 폭로, 조탁되지 않은 저질 막말, 때와 장소를 못 가리는 경박함, 상대에게 쏟아내는 저주에 가까운 독한 발언, 유권자만을 의식한 포퓰리즘 공약 남발을 무시하고 살기에는 너무 짜증이 난다. 다행히 국회의원들 스스로 자신들의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를 인정하고 있다.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일치를 위한 정치포럼’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의원대상 설문조사에서 10명 가운데 9명이 정치인들의 막말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알고 죽는 해소병처럼 스스로 알면서도 못 고치고 있다.
재론하기 싫지만 논점을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 몇 사례를 되짚어 본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의 ‘자연산’ 발언, 민주당 소속 송영길 인천시장의 “이게 진짜 폭탄주” 발언은 경박함의 극치다. 막말하기 대표주자가 되어 버린 민주당 천정배 의원. 그는 “이명박 정권을 확 죽여 버려야 한다”는 막말을 해놓고도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느냐?”는 오만함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출당당한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 시리즈에 이어 민주당 이석현 의원의 ‘안상수 대표 아들의 서울대 로스쿨 부정입학’ 허위폭로에 이르면 ‘한국정치=3류’라는 등식이 더욱 분명해진다.
민주당이 최근 쏟아 내놓은 무상복지 시리즈는 나중엔 어찌 되건 유권자 표를 얻고 보자는 선심성 포퓰리즘의 대표적 사례다. 명백히 재원 조달이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이 말하는 ‘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교육’을 그토록 강하게 밀어붙이는 그들의 사고 저변에는 정권 획득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는 ‘위험한’ 사고가 깔려 있다. 이제는 민주당의 무상복지 시리즈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아가는 것 같다. 민주당 지도부가 ‘무상복지 시리즈’를 계속 고집할 경우 어느 순간 불어 닥칠 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기야 민주당만을 욕할 일이 아니다. 기록을 보니까 한나라당도 야당시절에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건 적이 있으니 권력을 탐하는 이들의 속성은 같은 모양이다.
2012년은 한국 정치사에서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는 매우 중요한 해이다. 4월에 19대 국회의원선거가 있고 이어 12월에는 18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처음으로 해외동포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고, 선거를 ‘투표 놀이’로 생각하며 자신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젊은층의 선거 참여가 예상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선거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국회의원들이 많이 참석한 모임에서 한 정치원로는 “지금까지 정치가 국민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양대 선거가 치러지는 다음해에는 국민이 정치인에게 고통을 주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뼈있는 말을 남겼다.
지난 수십 년간 치러진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국민은 참 지혜로운 선택을 하고 있다. 국민이 한곳에 모여 의견을 주고받은 것도 아닌데 선거 결과를 보면 권력의 균형추가 적절히 좌우로 옮겨진다. 때로는 황금분할의 구도를 절묘하게 만든다.
그동안 자기도취에 막말을 쏟아놓은 국회의원들, 틈만 있으면 ‘아니면 말고 식’의 허위사실로 국민을 기만한 의원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먹은 밥값을 후손들에게 10배로 물게 하려는 포퓰리즘적 선심 공약을 남발한 의원과 정당은 차기 선거에서 꽤 고통을 당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국회의원들이 국민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그들도 이제는 한번 당해야 할 것 같다.
이강렬 편집국 국장기자 ry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