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립합창단 소프라노 이보은씨 음악 달란트 아이들과 나누다

입력 2011-01-26 18:54


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막식.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네 살 여자 아이는 올림픽 주제가를 흥얼댔다. 엇박자가 있는 고음역대의 노래, 처음 들었는데도 어렵지 않게 소화해 냈다. 부모는 깜짝 놀랐다. ‘하나님이 우리 딸에게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주셨구나.’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서울시립소년소녀합창단에 들어갔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는 그에게 놀이터였다. 넓은 무대, 밝은 조명 아래에 서서 객석에 앉은 엄마 아빠를 찾는 게 너무나 재밌었다. 어느 날 무대에서 엄마를 내려봤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아이, 엄만 왜 눈을 감고 있어. 나 봐줘야지”라고 중얼거렸다.

‘손에 손잡고’를 잘 부르던 꼬마 아가씨는 부모의 기도 덕에 어엿한 성악가로 성장했다. 소프라노 이보은(27)씨. 그는 이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산다라박이다!”

서울대 성악과 3학년이던 2005년. 노래 실력은 출중했다. 그러나 그를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한 사람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평창동 예능교회 찬양 담당 박종암 목사였다.

“보은이는 노래를 참 잘하는데 딱딱함이 남아 있는 듯해. 신앙적으로 조금만 더 성숙해지면 참 좋겠어. 해외선교를 함께하면 그 2%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이씨는 당시 선교의 중요함을 몰랐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일은 다른 사람의 몫으로 여겼다. 결국 “나중에 참여하겠다”는 짧은 말을 목사님께 전했다. 박 목사는 아쉬웠지만 강요하지 않았다. 필리핀 선교 참가자 명단에서 이씨의 이름을 지웠다.

그러던 어느 날, 모르는 전화번호가 이씨의 휴대전화 액정화면에 떴다. “필리핀 선교 첫 모임이 내일입니다. 참석하시죠?” 이씨는 자기도 모르게 “네”라고 답했다.

‘희한하네. 분명히 이름을 지웠는데…. 일단 모임에는 한번 가보자.’ 이씨는 별 기대 없이 모임에 참석했다. “필리핀 현지 아이들 사진을 봤어요. 어렵게 사는데도 어쩜 그리 표정이 밝고 아름다운지요. 그 미소가 저를 부르는 것 같았어요. ‘갈게요’라고 외쳤죠.”

그해 8월, 필리핀 마닐라의 여름은 혹독했다.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높은 온도에 숨이 턱 막혔다. 공항 입국장을 나서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그를 따라오기 시작한 것. 심지어 사인 요청까지 했다. 영문을 몰랐다. 인솔자가 물었다. “왜 이 누나한테 사인 받으려는 거야?”

“산다라박!”

‘필리핀의 보아’로 유명했던 산다라박으로 착각했던 거다. “산다라박 데뷔전이라 그가 누구인지도, 제가 그를 닮았는지도 몰랐죠. 아이 눈엔 제가 그렇게 보였나 봐요. 학교를 가도, 유치원을 가도 스타였죠.” 이씨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마닐라에 도착할 때까지 걱정이 앞섰다. 아이들을 안을 수 있을지, 자신이 뭘 전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어요. 저도 좀 더 편하게 제 마음을 열 수 있었고요.”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 그리고 축가

그곳 아이들은 무덤가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생활이 어려워 열다섯 살 정도부터 매춘에 나서는 여성이 많았어요. 아이들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죠. 형제인데 아버지가 다 다르기도 하고요.”

남녀가 평생을 기약하는 결혼식은 그곳에선 먼 나라 얘기였다. 마닐라에서의 마지막 밤. 한인교회에 남녀 20쌍이 손을 잡고 줄지어 섰다. 남성은 양복, 여성은 흰색 드레스 차림이었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평생 서로를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신부 20명은 생활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린 시절부터 매춘을 한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신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

결혼식 전날 밤 현지 한국인 선교사가 이씨를 찾았다. “축가를 부탁드립니다. 노래로 힘을 주세요.” 이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가는 길(God will make a way).’ 길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위해 길을 만들어주신다는 가사는 모두의 마음을 적셨다. 가장 큰 감동을 받은 건 이씨였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1절을 마쳤다. 그렇게 어렵게 노래를 부른 건 처음이었다. 간신히 노래를 마친 뒤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혼식이 끝난 뒤 그는 20쌍의 남녀, 그리고 그들의 아이를 일일이 잡고 기도했다. 그날, 그렇게 이씨는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새로운 꿈을 꿉니다

이씨는 어릴 때부터 “노래 참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다. 실패를 모르고 살던 그에게 처음 찾아온 시련은 낙방의 아픔이었다. 서울예고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던 날, 어머니가 이씨의 손을 잡고 조용히 기도했다. “이날의 실패가 보은이의 앞날에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내 뜻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거구나. 무조건 따라야지’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낙방은 ‘순종’이라는 큰 선물을 어린 제게 안겨줬죠.” 순종을 약속하자 하나님은 이듬해 편입 합격의 기쁨을 주셨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그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인 음악적 재능을 세계 곳곳의 아이에게 나누며 살겠다는 꿈이다.

“해외선교를 수차례 나가면서 느낀 게 있어요. 아이들이 찬양할 때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온전히 하나님께 올리더군요. 노래 실력이 좋든 나쁘든 개의치 않아요. ‘부끄럽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노래하지 않으려 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자란 데에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고 느꼈다. ‘하나님이 나누라고 이만큼 나를 가르쳐주셨구나.’ 그는 재능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현재 남양주시립합창단 소속인 그는 지난해 뮤지컬 ‘미녀와 야수’에서 미녀 역을 맡아 열연했다. 자신을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망울과 뜨거운 환호를 잊지 못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번 느꼈다. 매년 가난한 나라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그는 이번 여름 태국 방콕 인근 오지에서 재능을 전할 예정이다.

“이 세상엔 기쁘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이들이 참 많아요. 여건이 되지 않아 음악을 배우고 접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고 싶어요. 제 작은 능력을 사람들에게 베풀며 하나님 사랑 전하고 싶습니다.”

글 조국현 기자·사진 윤여홍 선임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