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바울 (4) 예비하신 길로 가지 않을 때마다 발병

입력 2011-01-26 17:57


1982년 군 입대 직전 목회자 소명을 받았다. 이사야 6장 8절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은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 주십시오!” 하며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신학대학원에 가려고 했으나 집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직장 생활을 해야 했다.

직장 생활 8개월가량 됐을 때다. 휴가 기간을 이용해 청년수련회에 참석했다. 수련회 마지막 날 갑자기 턱 아래가 불편했다. 손으로 만져 보니 큰 혹 같은 것이 만져졌다. 병원 진찰 결과 침샘에 돌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돌이 침샘 입구를 막고 있어서 부어올라 혹같이 됐다는 것이다. 의사는 수술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직감적으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수술 대신 약물 치료로 전환하고 약을 먹었다. 다행히 부은 곳이 가라앉았고 그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본격적인 신학의 길을 가기 위해서였다.

아내는 신대원 3학년 때 만나 결혼을 했다. 우리는 부모님 전도를 위해 분가하지 않고 본가에서 살았다. 아내는 어려운 시집살이를 마다 않고 부모님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우리가 교회 가는 것을 반대했지만 며느리의 헌신적인 섬김 탓인지 점차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어머니 역시 아내와 결혼한 지 1년 만에 교회에 나가셨다.

그 후 3년이 지나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했고 나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복음을 전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 예수를 영접하셨다. 하나님은 남묘호렌게교에 깊이 빠져 있던 우리 가족들을 그분의 계획대로 나를 처음 불러내셨고 온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정으로 변화시키셨던 것이다. 가족 구원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의 축복은 가족과 세대를 통해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대원에서 세계 선교에 눈을 뜬 후 하나님은 나를 선교사의 길로 부르셨다. 하지만 곧바로 선교사로 나가지 못했다. 신대원 졸업 후 부산의 한 교회에서 목회 사역을 시작했다. 나는 막연했지만 확신에 차서 북한 선교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열리지 않았고 선교 소명도 점차 흐려졌다.

그러던 중 98년 초 왼쪽 두 번째 손가락 끝에 까만 줄이 생기더니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더 커졌고 의사는 손톱 무좀이라고 했다. 무좀약만 발랐다. 하지만 낫지 않았고 오히려 더 커져서 손톱 전체를 덮을 지경이 됐다.

몇 개월이 지나 큰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암 진단이 나왔다. ‘악성 흑색종’으로 동양인들에게는 많이 발병하지 않고 서양 사람들에게 가끔 발병하는 희귀암의 일종이라 했다. 치사율이 높고 치료가 어려운 암이었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나는 왜 이렇게 병을 달고 살까. 소아마비와 침샘 돌, 이번엔 암이라니. 수술을 위해 입원하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순종을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술을 하면서 왼손 두 번째 손가락을 뿌리째 제거하게 됐다.

수술 이후 두 달이나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찬송을 부르며 손뼉을 치고 싶어도 치지 못해 안타까웠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손뼉 치면서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적인가를 그때 알았다. 나는 수술 이후 하나님께서 선교지로 부르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모든 사역을 내려놓았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