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박병광] 21세기 미·중 帝國의 만남
입력 2011-01-25 18:25
적잖은 전문가들은 20세기가 미국과 소련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미국과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런 관점에서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21세기형 제국’의 만남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진타오 주석은 “세계의 어떠한 문제도 미·중 간 협의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고 ‘G2 시대’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음을 과시했다.
실제로 두 나라 정상은 그 위상에 걸맞게 미·중 관계 강화, 고위층 교류 증진, 지역 및 지구적 도전, 미·중 및 세계경제, 기후변화 및 에너지, 환경문제 등 폭넓은 이슈들에 관해 논의했다. 특히 양국 정상은 ‘지역 및 지구적 도전’에 관한 논의에서 북한 핵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를 최우선 현안으로 다루었다. 이는 두 강대국이 직면하고 있는 지구촌 안보사안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위협의 하나가 북한 문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G2 시대’ 공식 선포한 자리
미·중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남북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을 표시했다. 또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면서 6자회담 재개 필요성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주목되는 것 중 하나는 남북관계 개선 및 남북대화를 ‘필수단계’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남북대화를 거치지 않고는 6자회담이나 미·북 직접대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한국과 미국이 합의했던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 즉 ‘국면무마용’이 아닌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남북대화를 중국이 인정하고 북한에 촉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UEP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는 부분이다. 이는 향후 북한의 UEP 문제가 상황 전개에 따라서 유엔 안보리에 회부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까지 발표된 중국의 공식입장은 “북한의 농축우라늄 시설을 직접 보지 못해 믿을 수가 없다”라는 것이었음을 고려하면 중국 입장에 일정 부분 변화가 있음을 감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한반도 안정에 도움될 수도
미·중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적잖은 숙제를 남기고 있다. 북한은 미·중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남북한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의해 왔고 우리 정부는 이를 수용한 상태이다. 고위급 군사회담에서 북한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도발 등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유감이나 사과를 표명할지는 불투명하다. 그렇다고 미·중 정상이 남북대화의 필요를 강조한 상황에서 대화를 기피하는 것은 우리의 입지를 약화시킬 뿐이다. 북한과의 만남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책임을 추궁하고 요구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이다.
‘6자회담 재개’에 대해서도 진지하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미·중 양국이 6자회담 재개 필요성을 공감한 것은 머잖아 중국 주도의 회담 재개 움직임이 활발해질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제시하던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을 보다 유연하게 만들도록 요구하는 압박이 될 수도 있다. 우리로서는 조만간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를 대비해 전략과 전술을 재검토하고 보다 주도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끝으로 미·중 정상회담은 그동안 양국 간의 첨예한 갈등을 봉합하고 당분간 ‘협력’에 방점을 맞추기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제기된다. 즉 전략적 중심축을 한·미동맹에 두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그동안 소원해진 한·중 관계를 조속히 회복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들을 모색하고 행동에 옮기는 노력이 절실한 것이다. 미·중 간의 협력구도를 ‘한반도 긴장완화’의 기회로 간주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남북관계 개선 및 동북아 안정의 계기로 활용해 나가는 지혜가 요구된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硏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