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역당국 무능이 가져온 구제역 재앙
입력 2011-01-25 18:26
전국을 가축의 무덤으로 만든 이번 구제역 재앙은 결국 발생 초기의 미흡한 대응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구제역은 전염성이 매우 강해 초기 방역이 관건임에도 대처 매뉴얼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아 화를 키운 것이다.
어제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발표한 구제역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3일 경북 안동 돼지농가에서 처음 구제역 의심신고가 들어왔으나 당국은 간이키트 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됐다는 이유로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엿새 후인 29일 양성으로 확정판결을 받았을 때는 이미 바이러스가 주위를 오염시켰다는 것이다. 감염 돼지 한 마리가 하루 10억 개의 바이러스를 배출하는 점을 감안하면 엿새 동안 이를 방치했다는 것은 실로 끔찍한 일이다.
이후 전국으로 확산된 경위를 보면 과연 우리나라에 가축질병 관리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안동에 집성촌이 많아 회합과 이동이 잦았고, 이로 인해 감염농가가 확산된 이후에도 사료 차량이 전국을 헤집고 다니면서 곳곳에 바이러스를 전파했다.
지금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동일한 종류라는 사실은 결국 방역당국의 무능과 나태가 재앙의 원인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지난 2000년 3월 경기도 파주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2200여 마리 살처분으로 진압될 수 있었던 것은 신고 즉시 농림부 차관보가 현지로 내려가고, 농림장관이 새벽 2시에 국방장관에게 군병력 동원을 요청하고, 백신 접종을 조기 실시하는 등 신속하고 강력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 비하면 이번에는 모든 게 늦고 허술했다. 그나마 백신도 모자라 적정 함량을 접종하지 못했다고 하니 답답할 뿐이다. 당장은 구제역 진화가 급선무지만 책임자를 가려 상응한 문책이 있어야 한다.
축산농가의 안이한 자세도 문제다. 구제역 발생국을 여행하고 와서 곧바로 축사를 드나드는 행위는 축산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덴마크의 경우 해외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48시간 내 농장방문을 금지한다고 한다. 살처분 가축에 대해 시가대로 보상을 해주는 제도가 행여 농가의 안이함을 키우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