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차관 전격 퇴진… 美, 대북·대이란 정책 변화 예고?
입력 2011-01-25 18:06
스튜어트 레비 미국 재무부 차관의 퇴진이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 미묘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레비 차관은 경제 관료이지만, 북한엔 ‘저승사자’ 같은 존재다.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재무부 내에서 대북 금융 및 경제제재 정책을 주도해 왔다. 그는 2005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 루트를 정확히 파악해 북한 정권에 엄청난 타격을 가한 것이다. 북한 지도부가 가장 아파했던 부분이다.
레비 차관은 북한과 이란 등 미국이 찍은 ‘불량국가’들을 몰아세우는 데 외교적 정책수단으로 금융제재 방안을 기획해 시행한 대표적인 강경파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 재무차관직을 유지했다. 미국 기업에 대해 북한 기업·기관과의 거래 금지, 북한과의 국제 금융거래 제재, 사치물품 대북거래 제한 등 제재 조치는 모두 그의 손을 거친 것이다.
따라서 워싱턴 일각에서는 그의 퇴진이 미국의 대북·대이란 제재 정책의 변화를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주 미·중 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재개 추진 등이 언급되고,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이 열리는 등 한반도 정세가 제재보다는 유화 국면으로 바뀌는 듯한 와중에 그의 퇴진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각이 고개를 들자 미 행정부는 레비 차관의 퇴진이 정책 변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일축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2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레비 차관의 퇴진이 행정부 정책 수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관이 나서서 설명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가이트너 장관은 레비 차관의 후임이 지난 2년간 그를 보좌해 왔던 데이비드 코언 테러·금융정보담당 차관보여서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무부 내 또 다른 대북·대이란 제재 실무주역인 대니얼 글레이저 테러·금융정보담당 부차관보나 국무부 내 로버트 아인혼 대북·대이란 제재 조정관이 그대로 남아 있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제재 정책의 상징적 인물인 레비 차관의 퇴진이 미·중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 변화와 맞물린 것 아니냐는 분석을 완전히 불식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