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생명 나눔… 충주 충현교회 임순창 목사 감동 스토리

입력 2011-01-25 17:37


24일 정오, 서울 풍납2동 서울아산병원 지하 중국음식점. 충북 단양 만종교회 홍성준(53) 목사가 자신의 딸을 위해 간을 이식한 충주 충현교회 임순창(40) 목사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간이식 수술 후 10일간 병원신세를 진 임 목사가 오후에 퇴원해서 충주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홍 목사는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했지만 홍 목사가 임 목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어쩌면 이 점심식사가 전부일 것 같다.

홍 목사의 아들 남기(25)씨와 딸 선영(23)씨는 둘 다 ‘당원병 3형’이라는 생소한 병을 달고 태어났다. 간에서 당을 분해하는 세 번째 효소의 이상으로 생긴 것이다. 국내에서도 환자가 몇 안될 만큼 희귀병이다. 병원에서는 “2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유일한 처방은 간이식이었다. 다행히 남기씨는 7년 전 대전의 한 목회자가 선뜻 간을 기증하는 바람에 비록 장애5급이긴 하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선영씨에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수년 전부터 상태가 악화돼 한 달에 한 번꼴로 피를 토했다. 한때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희망을 걸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무위로 끝났다. 교인이래야 노인 4∼5명이 전부인 교회의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도밖에 없었다.

임 목사는 지난해 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충북동노회에 참석해 홍 목사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했다. 합동 소속으로 단양의 산골에서 사역하는 홍 목사의 딸이 시한부로 간기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광고를 한 목회자로부터 들었다. 새벽기도를 하던 임 목사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내 간을 이식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저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게 됐다. 결국 홍 목사와 통화를 한 뒤 어렵사리 사모의 동의까지 얻어냈다. 두 차례의 검진 끝에 지난 12일 이식수술을 마쳤다. 임 목사의 간이 작아 홍 목사의 아내 정인숙(51) 사모도 간이식을 해야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임 목사는 이를 위해 두 주나 교회를 비워야 했다.

임 목사는 “평소 남을 돕는 일에 잘 나서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이 주신 감동에 꼭 순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목사로서 말로는 수없이 사랑을 외쳤지만 정작 실천하지 못해 죄스런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면서 “이번에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임 목사의 손을 꼭 잡은 홍 목사는 “평생 못 갚을 은혜를 입었다. 나도 다른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정 사모도 눈시울을 적시며 “나는 그 사랑을 다 갚을 수 없지만 우리 하나님이 대신 갚아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임 목사가 다시 “부담스러워하실 필요 없다. 예수님이 우릴 위해 그러셨듯 강도 만난 이웃을 돕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뿐”이라며 오히려 홍 목사 부부를 위로했다.

현재 남기씨는 방통대 행정학과 4학년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회사업가가 되는 게 꿈이다. 선영씨 역시 방통대 중국어학과를 다니다 휴학 중이다. 앞으로 방송국 성우가 돼 자신처럼 삶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이날 마스크를 쓴 채 힘겹게 말문을 연 선영씨는 “몸이 나아지면 서울에 올라가서 본격적으로 성우학원을 다닐 계획”이라고 말했다. 선영씨는 병원에 온 뒤부터 ‘구하라 주실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는 마태복음 7장7절 말씀을 굳게 붙들고 있다고 했다. 물론 간이식으로 완쾌되는 것은 아니다.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남매는 자신들의 꿈이 반드시 이뤄질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25년간 두 자녀를 뒷바라지하느라 홍 목사 부부의 삶과 사역은 말이 아니었다. 갑자기 자녀들의 상태가 악화될 수 있기에 잠을 설치는 날이 다반사였다. 선영씨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두 부부는 떨어져 살았다. 언제든 자녀들이 쓰러지면 응급실로 달려가야 했기에 사모는 충주에서 두 자녀와 살았고, 홍 목사는 단양의 산골에서 홀로 교회를 지켰다. 그동안 다른 교회에서 여러 차례 청빙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홍 목사는 거절했다. 비록 소수지만 노인 성도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어려운 형편에 자녀들 병원비까지 보태느라 정 사모는 수년 전부터 재래시장 야채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오고 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목회에 대해 회의를 품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홍 목사는 “두 차례의 간이식을 통해 경험한 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사실”이라며 “삶이 힘들고 답답해 의심을 품을 때마다 하나님은 크고작은 경험들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북돋아주셨다”고 고백했다.

비록 암울한 일들도 적지 않지만 교회는 살아 있었다. 대전의 목회자와 임 목사가 신체의 일부를 기증한 것 외에도 여러 교회와 성도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하고 기도해줬다. 선영씨 병원비는 현재 3300만원을 넘었다. 앞으로 며칠이나 더 병원신세를 져야 할지, 병원비는 또 얼마가 추가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한 이들은 이것마저 믿음의 연단으로 여기며 감사하고 있다(후원계좌:국민은행 홍성준 402 21 0573 361).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