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85)
입력 2011-01-25 14:14
Martin Luther의 ‘Colloquia’
지난 주 토요일은 조은구 장로님의 큰 아들이 낳은 쌍둥이 손자 손녀 돌이었습니다. 나는 거기서 마르틴 루터가 저녁 먹은 다음에 이웃들과 차를 마시며 나눴다는 ‘탁상담화’ 중 한 쪽을 돌을 맞은 부모와 가족들에게 읽어 드렸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20세가 될 때까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가톨릭 신부로서 결혼도 하지 않은 루터가 했다는 이 말의 뜻인즉슨, 인생을 몇 가지로 제한하거나 통제하지 말라는 뜻일 겁니다. 그래야 인생이 부요해진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뷔페로 차려진 음식을 두 차례 날라다 먹는 중에 이른바 ‘돌잡이’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벤트를 전담하는 사회자가 돌잡이를 하겠다고 하고는 두 쌍둥이들 앞에 이것저것 담겨진 턱이 얕은 상자를 내밀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그 안에는 청진기, 연필, 돈, 공책, 실타래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쌀이 돌잡이의 가장 중요한 품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세태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빠져 있습니다. 사회자는 아이들이 돈과 청진기를 집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게 마치 부모의 마음이며, 그들이 살아갈 인생길의 최고 가치라도 되는 양 말입니다.
돌잡이를 보면서 루터의 담화록을 잘못 읽었구나 싶었습니다. 루터의 말대로 하자면 돌잡이를 하는 그 상자에 최소한 50가지 정도의 인생을 사는 재미난 상징적인 도구들을 놓아두어야 했으니까요. 이 돌잡이 행사가 어디 ‘승연’이와 ‘현채’(그 날 돌을 맞았던 쌍둥이들의 이름)만의 일이겠습니까? 조선팔도의 돌잡이가 이 범주 안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 땅의 청소년들은 갓난아기 때부터 그들이 살아야 할 인생이 이미 몇 가지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니, 그들이 어찌 ‘재미난 인생’을 살 수 있겠어요.
토요일을 지나 주일을 바쁘게 지내다가 오늘 아침 국민일보를 펴니(1월25일 22면), 거기 ‘돌잡이를 보며’라는 이건용 선생의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분의 생각도 나와 진배없는 것이었는데, 그걸 읽노라니 또 토요일 그 돌잡이가 생각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부모들에게, 특별히 갓난아이들의 부모들에게, 이제 얼마 있으면 돌을 맞게 될 엄마 아빠에게 다시 한 번 루터의 대화록을 들려 드립니다. 제발 아이들의 인생을 ‘몇 가지’로 제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젊은 사람들은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20세가 될 때까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허태수 목사(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