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알고보면 보수군주?… 역사서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발간
입력 2011-01-24 17:29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문화군주’ 정조가 사실은 ‘성리학 이념을 절대수호한 보수군주’라고 평가한 역사서가 나왔다. 백승종 전 서강대 교수의 신간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푸른역사)이다.
저자가 정조의 문화적 역량과 식견을 인정하면서도 18세기의 보수·반동주의자라고 보는 이유는 문체반정(文體反正·1794) 때문이다. 문체반정은 18세기 후반 당시 사대부에 유행하던 패관소품체 대신 고문체로 돌아가라는 문화운동을 정조가 강압한 것으로, 그간 학계에서는 패관소품을 즐겨 썼던 노론의 세력을 억누르고 소론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그러나 저자는 “새로운 문체로 표현되는 새로운 사상, 새로운 시대의 기운을 막고 주자학으로 돌아가기 위한 정조와 젊은 사대부들의 문화투쟁”이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그 핵심인물로 강이천(1768∼1801)을 지목했다. 표암 강세황의 손자이기도 한 그는 어려서 정조 앞에 나아가 시를 지을 정도로 촉망받는 인물이었지만, 소품체에 매진한다는 것 때문에 왕의 눈 밖에 났다. 그는 안동김씨의 종손 김건순 등과 어울려 비밀조직을 만들며 정감록과 천주교 등을 공부했고, ‘혹세무민’한다는 고발 사건에 연루되어 옥에 갇히고 만다. 결국 순조 1년의 신유사옥 때 죽었다.
청나라를 통해 양명학·고증학 등 새로운 유학 사조와 서양 문물이 들어오던 18세기는 젊고 ‘불온한’ 선배들에겐 기회였지만 국왕과 기득권층에겐 위기였다. 정조는 민생 안정과 왕권 강화를 위해 힘쓴 유능한 군주였지만, 불온한 젊은이들과 새 시대의 변화를 용납할 만큼 유연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게 저자의 견해. 정조의 문체반정이 성공하고, 강이천이 죽은 후 조선에 다시 불온한 선비들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