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정병국 장관 후보자가 할 일

입력 2011-01-24 17:37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내각 입성은 ‘따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지난 19일 열린 정 후보자에 대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경과보고서가 채택됐으니 사실상 임명과 취임 절차만 남은 셈이다.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도 양평 남한강에 예술특구를 조성하고 차량 주유비를 과다사용하는 등 논란도 있었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정 후보자를 지근거리에서 서너 번 만난 적이 있다. 기자의 기억에 남아있는 그의 이미지는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소탈한 성격에 문화예술 현장을 직접 발로 뛰는 열정을 지녔다는 점이다. 2009년 일본 니가타현에서 개최된 ‘대지 예술제-에치고 마쓰리 트리엔날레’에 정 후보자는 미술계 인사들과 참가했다. 미술인들이 대거 모여 있는 양평 예술축제를 벤치마킹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 만남은 지난해 말 화가 사석원씨의 출판기념회에서였다. 서울 청계천의 허름한 음식점에서 마련된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정 후보자는 “사석원 선생과는 오래 전부터 친한 사이”라며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을 보니 사 선생의 인간관계를 짐작할 수 있겠다”고 인사말을 했다. 이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의 송년회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 후보자는 장관 임명이 확실하다는 판단 아래 최근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만나며 각 분야 현안을 듣고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문화예술 분야에서 의정활동을 해왔고 최근까지 국회 문방위 위원장을 맡았으니 이쪽 인사들을 잘 아는데다 업무에 대한 자신감도 충분할 것이다. 문화부 직원들과 문화예술계 사람들도 ‘실세 장관’이라며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정 후보자가 장관이 된다면 할 일이 많다. 먼저 보수우익과 진보좌익으로 갈라진 문화예술계를 화합과 상생의 장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세력에 대한 축출 등으로 문화예술계는 갈등이 고조돼 있는 상황이다. 전임 장관이 껄끄럽게 여기며 풀지 못한 일을 후임 장관이 해결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좀 더 넓고 크게 볼 일이다.

최근 10년가량 문화부 장관은 대중문화계 인사가 줄줄이 바통을 이었다. 영화감독 이창동, 연극배우 김명곤, 탤런트 유인촌씨 등이 장관에 오르면서 ‘대중과 친숙한 문화행정’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지만 자기 분야 외 실무는 잘 모르고 예산 확보도 없이 장밋빛 희망만 부풀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래서 문화부의 체질개선은 정치인 출신 정 후보자의 과제이기도 하다.

지난 연말 사업 주체가 결정된 종합편성 및 보도채널도 정 후보자가 문방위 위원장으로 있을 때의 사안인 만큼 특혜시비를 불식시키는 불편부당한 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 또는 자신의 장관 재직 내에 완공하겠다고 욕심을 부린다면 광화문 복원처럼 졸속공사라는 과오를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양평·가평 3선 의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인 정 후보자의 그동안 행보를 보면 문화예술, 특히 미술계에 집중돼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문화예술계 전 분야에 걸쳐 시야를 넓혀야 하고 관광산업과 체육계에도 할 일이 태산 같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이고 장관 임기가 몇 년이라도 부족할 판이다.

정 후보자는 국회 청문회에서 내년 4월 11일 치러지는 총선에 출마하는 문제에 대해 “내 의지대로 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항간에는 그가 내년 총선에서 4선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공직자가 출마하려면 선거일 90일 전(내년 1월 12일)에 사퇴해야 하기 때문에 정 후보자가 출마한다면 그의 장관 임기는 기껏해야 1년이다.

1년은 짧고도 긴 시간이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행여 표밭을 다지는 데 장관직을 이용한다면 개인은 성공할지 모르겠으나 역사에는 ‘철새 장관’이라는 오명을 남길 것이다. 그것이 기우이기를 믿는다.

이광형 문화과학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