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5) 고영 소셜컨설팅그룹(SCG) 대표

입력 2011-01-24 17:28


“사회적 기업 등에 무료 컨설팅 도움, 남을 돕는 순간 자신의 업무도 쑥쑥”

지난 16일 오후 서울 신수동 주민센터 3층 한 귀퉁이의 세미나룸. 일요일에다 혹한의 날씨였지만 이곳의 열기는 뜨거웠다. 대학생들이 경영학에 관한 세미나를 하는 듯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김정현 대표 등 보청기 생산업체 딜라이트(Delight) 구성원들이 소셜컨설팅그룹(SCG)의 고영 대표로부터 경영 컨설팅을 받는 자리였다. 사업계획서를 어떻게 쓸 것인지, 상품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투자를 제대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 고 대표는 대학생 기업인들의 질문에 세심하게 조언했다. 2시간여에 걸친 컨설팅은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고대표의 직업은 컨설턴트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소속이고, 최근 이사로 승진했다. 컨설턴트의 업무가 만만치 않지만, 그는 주말이면 SCG 대표 역할에 분주하다. 이곳저곳 장소를 옮겨가며 무료 컨설팅을 해준다.

이날 그의 컨설팅을 받은 딜라이트는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사회적 기업이다. 지난해 4억원의 매출을 달성했고 올해 100억원대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영업활동을 하되 공익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을 가리킨다. 시중의 보청기 가격이 150만∼200만원 정도이지만 딜라이트는 원가 절감을 통해 34만원에 판매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청각 장애인이 보청기를 구입할 때 34만원의 정부 보조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사실상 무료로 보청기를 보급하는 셈이다. 김 대표는 26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중소기업인과의 간담회에 참석할 정도로 주목받는 대학생 경영자다.

SCG는 회원들의 전문성을 활용해 주로 딜라이트와 같은 사회적 기업과 국제기구,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해준다. 창의력 교육을 위해 설립된 사회적 기업 ‘청소년 아이프렌드’나 재즈 오케스트라, 공정여행을 추구하는 여행사, 발효식품을 지적재산화해 보급하는 장독대 문화사업단 등도 SCG의 컨설팅을 받았다. SCG 회원들은 이런 활동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사회에 환원한다.

지금까지 SCG는 36개의 사회적 기업과 국제기구 등을 컨설팅했고, 일부는 진행 중이다. 비용으로 따지면 매달 15억원 가량에 해당하는 컨설팅을 무료로 진행하는 것이다.

SCG는 최근 현대자동차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미소금융재단을 운영 중인 현대자동차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서다. 현대자동차가 금전 지급은 물론 별도의 ‘미소학습원’까지 만들어 소상공인 활성화를 위해 지원하고 있으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SCG에 소상공인을 위한 온라인 상담업무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SCG 회원들의 일요일 일정은 오전 9시30분부터 시작할 때가 많다. 주중에 업무 강도가 높은 회원들로서는 휴일 오전부터 봉사하는 게 쉽지 않다. 고 대표는 “쉬어야 할 공휴일에 일하지만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관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즐거움이 그만큼 크고, 아울러 본인의 영역에서 재능 기부를 한 경험이 자신의 직업에서 성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가족 역시 든든한 지원군이다. 주말에 집을 비우는 남편을 반길 아내는 없지만 그의 아내는 잘 이해해준다고 한다. 고 대표는 “아내에게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며 “가족들에게 부족한 만큼 기부 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그가 재능 기부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은 30여 년간 전 세계의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일을 해온 미국 아소카 재단의 영향이 컸다. 그처럼 컨설턴트 출신이었던 빌 드레이턴 아소카 재단 대표도 큰 자극이 됐다.

고 대표는 SCG의 창립 회원이자 대표다. 2006년 지인의 부탁으로 ‘아름다운 가게’를 1년 정도 컨설팅한 것이 SCG 설립의 계기가 됐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컨설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후 동북아평화연대라는 단체의 컨설팅도 맡게 됐는데 법률이나 물류, 투자유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어서 ‘이참에 제대로 해보자’고 결심했다. 뜻을 같이 하는 후배 2명과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2007년 12월 2일, SCG가 첫 발을 내디뎠다.

SCG를 찾는 사회적 기업이나 시민단체가 늘어나면서 전문가 자원봉사자들도 늘어났다. 뜻있는 대학생들도 모여들었다. 3명으로 시작한 SCG는 불과 3년여 만에 255명에 달하는 큰 조직으로 발전했다. 전체 회원의 절반 정도는 직장인인데 대다수가 컨설턴트와 공인회계사, 변호사, 애널리스트, 마케터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다.

고 대표가 전문성을 활용한 봉사에 눈을 돌리게 된 데에는 기독교적인 가정환경에 힘입은 바 크다. 어머니는 지방에서 교회 전도사 활동에 열심이셨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교도소 사역이나 미혼모 사역을 하는 모습을 보며 성장했다. 아울러 자신이 어려웠던 시기에 주위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경험도 자양분이 됐다. IMF 때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 대학생활이 퍽 힘들어졌다. 그때 교회와 학교의 선후배 등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고 대표는 ‘나비형 인간’을 꿈꾼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거미형과 개미형, 나비형 등 3가지로 분류했다. 거미형 인간은 생산적·창조적 노력은 하지 않고 과거에 얻은 지식과 경험, 지위나 명성 등을 통해 먹고 산다. 개미형 인간은 부지런히 먹을 것을 수집하지만 자신의 가족이나 기업 등을 유지하기에 급급하다. 나비형 인간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해 자신의 몫을 챙기지 않고 쉬지 않고 옮겨다니며 생명을 전파한다. 바로 이 ‘나비형 인간’이 고 대표가 꿈꾸는 자신의 모습이다.

고 대표는 “홈페이지조차 없고, 모집을 위한 별도의 활동도 하지 않는데 이만큼 많은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와 재능 기부에 나서고 있다는 건 ‘나비형 인간’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의 진급이나 돈을 더 버는 데 목매고 있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개개인의 재능 기부는 작은 날갯짓에 불과하지만 선한 사람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확보하면 결국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