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박영범] 복지포퓰리즘 경계를(Ⅱ)
입력 2011-01-23 17:01
지난해 12월 27일자 본란에 복지포퓰리즘을 경계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같은 제목의 글을 쓴 후 한 독자로부터 항의전화를 받았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 대한 각종 혜택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면 200만원이 된다고 쓴 대목에 대해 기존복지 축소를 합리화시킬 수 있는 논거가 될 수 있다는 항의였다.
물론 금전적 환산가치가 200만원에 이르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해당할 것이다. 대부분의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아주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항의전화를 건 독자도 암환자로 정부로부터 30여만원의 급여를 받고 있고 부족분은 형제들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독자의 항의처럼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턱에 있다고 하나 아직 많은 국민이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다. 필자의 막내아들이 다니는 비교적 부유하다는 분당지역의 고등학교에서도 가장의 실직 등으로 아파트와 같은 재산은 있으나 당장에 급식비를 낼 수 없는 학생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복지가 정치인들에게는 매력적인 상품이 되는 이유도 바로 우리의 그런 복지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복지제도 도입은 우리 경제의 재정건전성, 즉 우리 경제가 공적복지 부여를 감내할 능력이 되는가를 먼저 고려하여야 한다. 일단 정착된 공적복지는 축소하거나 거두어들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경제가 급성장한 1950·60년대 소위 ‘골든에이지(Golden Age)’에 보편적 복지를 확대한 많은 선진국들은 고령화, 경제 침체 등으로 재정이 어려워지자 기존의 복지혜택을 축소하고자 하고 있으나 정치적으로 많은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정부가 대학생에 대한 학비 지원을 축소하려고 하자 시위 대학생들이 (영국 왕실이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세자 부부가 탄 승용차에 투척을 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지난 교육감선거에서 무상급식을 들고 나와 재미를 봤다고 자평하는 민주당은 최근 무상급식, 무상의료에 이어 무상보육까지 당론으로 채택하고자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재원 마련에 대해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이견을 제시하면서 유보된 상황이다.
민주당 추계에 의하면 5년 동안 단계적으로 입원진료비의 건강보험 부담률을 90%로 높이려면 연간 8조1000억원의 재정부담이 필요하다. 또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이용하는 만 5세 이하의 아동에게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현재 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차상위층과 만 2세 이하에 지급되는 양육지원수당을 만 5세 이하 아동 모두에게 지원하는 경우 연간 4조1000억원이 추가로 소요된다.
소위 ‘반값 등록금’ 정책에는 3조2000억원이 소요된다. 무상급식에 필요한 1조원까지 합하면 민주당 추계를 따르더라도 (정부는 이보다는 더 많은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연간 16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이건 이와 같은 무상복지혜택은 당장은 모두에게 달콤한 사탕이 되겠으나 우리의 재정상황을 보면 유럽과 같은 과다한 복지혜택으로 인한 경제위기가 우리에게도 올 수 있다.
2010년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394조7000억원으로 GDP 대비 34.2%이다. 2000년 처음 100조원을 넘어선 후 급증세이다. 올해는 4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2018년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인구의 14%, 2026년에는 20%를 넘어선다고 한다. 취업인구 감소, 복지수요 급증 등을 감안하면 무조건적인 공적복지의 확대는 곤란하다.
야당이 무상복지 시리즈를 연달아 내놓고 복지가 정치 쟁점화된다는 사실은 국민들의 복지 욕구가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다.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큰 틀을 각 사회구성원 간에 합의하고 그 안에서 개별적인 복지를 논하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