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뜻을 정하고 사는 자의 행복(김석년 목사)
입력 2011-01-23 16:36
뜻을 정하고 사는 자에의 행복 단1:8-21
새해를 맞이할 때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뜻을 정하고 새해를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사람이 있고, 뜻 없이 막연하게 또 한해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뜻을 정하였다 하더라도 야망과 성공을 위한 것이 있고, 자기개혁과 신앙성숙을 위한 것이 있습니다. 나아가 교회와 민족, 역사를 위한 뜻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뜻을 정하고 새해를 출발하였습니까? 그 뜻이 어떤 것인가요? 일찍이 민족의 선각자인 함석헌 선생은 어둔 밤에 새벽별 같은 화두를 던졌습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 모든 일은 뜻이다. 뜻에 나타난 것이 일이요 물건이다. 뜻있으면 있다(存在), 뜻 없으면 없다(無). 뜻 품으면 사람, 뜻 없으면 사람 아니. 뜻 깨달으면 얼(靈), 못 깨달으면 흙. 전쟁을 치르고도 뜻도 모르면 개요 돼지다. 영원히 멍에를 메고 맷돌질을 하는 당나귀다.”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뜻을 정한 사람들 다니엘서는 유다의 멸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유다 왕 여호와김 시대(주전609-598년)에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약탈하고, 왕족과 귀족의 자녀들을 불모로 잡아갑니다. 이때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 다니엘은 당시 14-15세이고, 왕의 미래조언그룹으로 선택될 만치 재능 있는 소년이었습니다(4절). 다니엘과 그의 친구에게는 비록 인질로 바벨론에 잡혀와 있지만, “왕의 진미와 포도주(5절)”가 제공될 만치 최상의 생활환경이 주어졌습니다. 그들의 출세와 성공은 보장되어있습니다. 이들의 나이 겨우 15세 전후였지만 생각 없이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개와 돼지로, 맷돌질을 하는 당나귀로 살길 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길 원했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resolved)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8절)”
왜 이런 뜻을 정하였을까요? 당시 왕의 진미는 바벨론 신에게 드려진 후에 왕에게 주어진 음식이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과 연관된 것입니다. ‘더럽히다’라는 단어가 이를 의미합니다. 우상의 제물이라도 신앙양심에 따라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 있지만,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문화와 ‘다르게 구별되게 살아야한다’고 뜻을 정한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 역시, '세상 안에 살지만(in the world)' 그러나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사람들입니다(not in the world)’. 세상 사람들과 분명 다른 가치를 가지고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할진대, 세상에 살지만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인생관, 가치관을 가지고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그 구별된 삶은 무엇입니까?
“크리스천은 모든 일에 있어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곧, 그리스도 십자가사랑의 삶을 따르는 것이다.”
사실, 저부터 이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일련의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입에 올리는 것조차도 부끄러운 일들,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창피한 사건들에 있어서 저 역시 공범입니다.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같은 목사로서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이를 애기하는 것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살기 때문입니다.
슬프게도 우리목사들이 세상과 똑 같이 교회를 통해서 ‘성공’하려고 합니다. 성공한 목사, 유명한 목사, 알아주는 목사가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쟁, 탐욕, 암투, 폭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너도 나도 성공하고 유명한 교회를 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용서하세요! 우리목사들의 잘못을 용서하세요. 저 역시 성공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목회의 길, 목사의 길, 크리스천의 길은 성공이 아니고 십자가사랑의 길인데, 저도 그만 잘못 알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성공을 따랐던 악한목사였음을 자백합니다. 정말 용서하십시오. 이제 부족하나마 깨닫고 무슨 일을 하던지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십자가사랑의 길을 가고자 새해를 맞이하여 다시 뜻을 정합니다. 기도해주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세상에서 무슨 일을 당하여도 오로지 그리스도 십자가사랑의 길을 가겠다고 뜻을 정한 사람이 바로 크리스천입니다. 이 사랑의 뜻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시 한 편을 다시 음미합니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채우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기도로, 감사로, 십자가로 그 길을 가라그러면 실제적으로 이 사랑의 길을 어떻게 가는 것입니까?
첫째, 사랑의 길은 ‘기도’로 가는 것이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고 그 길을 가는데 여러 시련과 모함을 당합니다. 그 때마다 기도로 사랑의 길을 갑니다(6:10. 9:3.4). 이 말이 이해되십니까? 사람은 본질상 죄인이기에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욕구성취요 자기만족이요 자기자랑입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 말이 있듯이 기도하는 사람만이 진실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사람은 가장 순수해집니다. 기도하면서 자신을 성찰하게 되고, 인간 한계성을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플러그인(plug in)되어 내 안에 하나님사랑으로 가득하게 될 때에 비로소 나를 드러내지 않는 순전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면 비로소 행복하게 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둘째, 사랑의 길은 ‘감사’로 가는 것이다. 다니엘은 그의 신상에 큰 위험이 닥칠 것을 뻔히 알면서도 평소 습관대로 기도하고 감사합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6:10).”
기도가 사랑의 길을 가는 기초라고 한다면, 감사는 사랑의 길을 가는데 있어 동인(動因)입니다. 인생원리 중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불행이든 행복이든 한 번 그 사이클에 들어가면 당분간은 그 현상이 반복됩니다. 술을 한번 마시면 술 마실 기회가 계속 생기고, 우환이 생기면 계속 우환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원불교(원망/불평/ 교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불교하면 원망 불평 교만이 이어져서 사랑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면 감사가 이이지고, 그 감사가 나를 계속 동인하기에 기쁘게 사랑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어려울수록 먼저 감사하십시오. 힘들수록 감사를 찾으십시오. 잘 들으세요.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므로 행복해집니다. 그 행복의 힘으로 우리는 사랑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셋째, 사랑의 길은 ‘십자가’로 가는 것이다. 십자가는 사랑의 목표입니다. 하나님사랑의 절정, 최고봉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예수의 비움 낮춤 복종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곧 십자가는 자기희생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고 사랑의 길을 가고자 자기희생을 감수합니다. 한창 나이에 열흘 동안 채식만을 하기도 했고, 사자 굴에 던져지기도 했습니다(1:16. 6:16).
자기희생은 먼저 내적 채움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저수지에 채움이 없으면 가뭄에 나눌 수 없습니다. 사랑하려면 먼저 내면을 채워야 합니다. 주어진 일에 쫓겨서는 절대 내면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당장의 급한 일보다는, 내적성숙을 위한 일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매일 해야 할 일이 산적해있습니다. 언제나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럼에도 매일 조금씩 먼저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매일의 묵상 ‘주님은 나의 최고봉(한영판)’으로 Q ? T 하기. 고전 한 페이지 읽기(요즘은 탁상담화, 루터). 독일어성경 한 단락 읽기입니다. 이것이 1년, 2년, 3년 모아지면 상당한 저수지가 됩니다. 영혼의 저수지가 차면 자연스럽게 매일의 삶속에서 자기희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새해에 먼저 내적 채움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너무 많이, 어렵게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적게 시작하십시오. 자기희생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저수지가 차면 조그만 문을 열면 절로 흘러나가는 것입니다.
뜻을 정하고 그 길을 가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다니엘은 뜻을 정하고 어떤 경우에도 사랑의 길을 갑니다. 기도로 사랑의 길을 갑니다. 감사로 사랑의 길을 갑니다. 십자가로 사랑의 길을 갑니다. 성령께서 다니엘로 하여금 사랑의 길을 가도록 이끄시고 재촉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신앙의 뜻을 정한 다니엘에게 3가지 복으로 형통케 하셨습니다.
하나, 지식 지혜 영감의 복을 주셨다(17절).
둘, 영화(榮華: 몸이 귀하게 되어 세상에 이름이 빛남)의 복을 주셨다(20절).
셋, 오래 쓰임 받는 강건의 복을 주셨다(21절. 80-90세).
2011년 새해에, 다니엘처럼 무슨 일을 만나든지 사랑의 길을 가기로 뜻을 정하십시오. 기도로 사랑의 길을 가리라. 감사로 사랑의 길을 가리라. 십자가로 사랑의 길을 가리라. 이렇게 뜻을 정한 우리에게도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영감 영화 강건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You Raise Me Up
사랑의 길을 가기로 뜻을 정한 당신에게 ‘You Raise Me Up’라는 노래로 격려하고 싶습니다.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 내 영혼이 힘들고 지칠 때/ When troubles come and my heart burdened be 괴로움이 밀려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할 때/ Then I am still and wait here in the silence 당신이 내 옆에 와 앉으실 때까지/ Until you come and sit awhile with me 나는 여기에서 고요히 당신을 기다립니다.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당신이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당신이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당신이 떠받쳐 줄 때 나는 강인해 집니다./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당신은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당신이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당신이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당신이 떠받쳐 줄 때 나는 강인해 집니다./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당신이 일으키어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김석년 목사(서초교회, 패스브레이킹목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