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보다 대중에게 평가 받고 싶어”… 도예가 이헌정 ‘건축의 모델’전

입력 2011-01-23 16:32


도예가 이헌정(44)씨는 2009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디자인 바젤 아트페어’에서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가 그의 작품을 구입한 덕분에 유명세를 치렀다. 미술품 애호가이기도 한 브래드 피트는 당시 전시장의 한국 부스(갤러리 서미)에 들러 이씨의 콘크리트 세라믹 탁자에 대해 “대단히 독특하고 멋지다”고 호평하며 작품을 선뜻 구입했다.

이후 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작가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홍익대에서 도예를 전공한 다음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대학원에서 조각을 공부한 그는 얼마 전 경원대에서 건축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국내외 미술관과 갤러리 등에서 전시 의뢰가 쏟아지고 작품도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한 걸음 물러나 건축에 대해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서울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 로비 일우스페이스에서 ‘건축의 모델’이라는 타이틀로 펼쳐 보인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브래드 피트 때문에 스타 작가로 떠올랐지만 불편한 부분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배우이고 제 작품까지 샀으니 당연히 고맙죠. 하지만 유명 인사가 작품을 샀다는 것보다는 대중에게 작업으로 평가받고 싶어요.”

전시장에는 기존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신작들이 자리 잡았다. 평소 자신의 작업에 건축적 요소를 접목시키고 싶어했던 작가는 도자와 목재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공간’ ‘색’ ‘빛’ ‘물성’ 등 현대 도시의 이미지와 개념을 표현해냈다. ‘건축가의 책상’ ‘푸른 방’ ‘광장’ 등 도자, 오브제, 설치작품 32점이 출품됐다. 건축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붓질했다는 회화 작품도 이번에 첫선을 보인다. 도예가는 물론이고 조각가, 건축가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전시작 가운데 높이가 4m에 이르는 거대한 집 모양의 조형물은 ‘공간’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기다란 얼음집(이글루) 모양의 건축물 속으로 들어가면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공간과 만나게 된다. 관람객들은 희미한 라이트가 켜진 그곳에서 작품과 하나가 되는 독특한 명상체험을 할 수 있다. 하얀색 공간은 환상성을 불러일으키고 단일성과 침묵성을 상징하는 장치다.

청계천의 세계 최대 도자벽화인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주목받은 그의 일관된 작품 주제는 ‘여행’이다. “여행이 새로운 것을 찾아 계속 옮겨 다니는 여정인 것처럼 작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도구로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인간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건축이 있는 것이죠.”

다분히 관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건축 관련 설치작품들은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작가는 이에 대해 “현대 건축물이 갈수록 커지고 비대해지면서 인간의 본질을 담는 그릇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고 있다. 거대한 건축물을 통해 삶과 예술의 허구성 같은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무료 관람으로 3월 4일까지 이어진다(02-753-6502).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