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52) 온돌이 그리워지는 계절
입력 2011-01-23 16:32
연일 계속되는 한파에 따뜻한 온돌이 그리워지는 때입니다. 온돌은 방바닥 밑에 깔린 넓적한 돌(구들장)에 불을 넣어서 열의 전도를 이용하는 한국 고유의 난방법이랍니다. 우리나라에서 온돌이 언제부터 설치되기 시작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고고학계는 함경북도 웅기지방의 청동기시대 움집에서 발견된 구들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한답니다.
온돌에 대한 기록은 중국의 ‘구당서(舊唐書)’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고려(고구려를 말함)항에 보면 “겨울철에는 모두 긴 구덩이를 만들어 밑에서 불을 때어 따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온돌은 열의 효율이 좋고 연료나 시설이 경제적이며 고장이 별로 없다는 장점 때문에 고구려뿐 아니라 백제와 신라에도 공급되고 고려시대에는 전국적으로 사용했다는군요.
온돌 유적으로는 2006년 강원도 춘천 율문리에서 발굴된 초기 철기시대 주거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0년 전에 집을 지어 살던 사람들의 온돌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형태를 유지한 채 발견됐거든요. 중부지방 呂자형 또는 凸자형 주거지가 그렇듯이 본채 안쪽 동쪽과 북쪽 벽면을 따라 확인된 온돌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ㄱ자형과 같은 구조랍니다.
폭 28㎝, 높이 19㎝인 아궁이 입구 양쪽에는 봇돌을 세우고 위에는 이맛돌을 얹었으며 아궁이 내부에는 조리 도구인 솥이나 토기를 얹기 위해 받침돌 2개를 두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온돌이 난방은 물론이고 취사 기능까지 갖춘 다용도 시설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는 겁니다.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3호분의 부엌 그림(사진)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8년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에 있는 옛 발해 성터에서 발굴된 온돌 유적은 중국 헤이룽장성 닝안시 발해진 상경용천부에서 나온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인데다 온전한 형태를 갖추어 학계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특히 이곳 온돌은 두 겹으로 된 쌍구들로 돌을 양 옆으로 세우고 위에 판판한 돌을 얹은 전형적인 고구려식으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랍니다.
미국의 과학자 퍼시벌 로웰은 1885년 펴낸 ‘조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돌에 대한 기록을 남겼지요. “온돌은 겨울철 방안을 따뜻하게 하는 일종의 화로 역할을 한다. 방 밖엔 난로용 구멍이 있는데 이것을 아궁이라 부른다. 불을 때면 열기가 마치 벌집처럼 돼 있는 미로를 따라 방바닥에 넓게 퍼진다. 아이디어가 뛰어나며 통풍 장치를 보충하면 훌륭한 난방장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온돌의 단점도 없지 않습니다. 방바닥면과 윗면의 온도차가 심해 누워 있는 사람의 건강에 좋지 않고 환기가 잘 되지 않아 건조하기 쉬우며 가열시간이 길고 온도조절이 어렵다는 것이죠. 전통 방식을 살리되 이런 단점을 보완한 한국형 온돌이 개발되면 좋겠지만 대부분 가옥이 보일러로 바뀐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온돌방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이광형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