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마비 등 의식 잃은 응급환자, 인공호흡 앞서 ‘가슴 압박’ 부터…

입력 2011-01-23 16:40


지난해 2월 회사원 이모(31)씨는 한 장례식장에서 갑자기 쓰러진 심정지 환자(50)를 목격해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했고, 근처에 비치돼 있던 자동제세동기(AED·심장 충격기)를 이용해 4차례 제세동을 실시했다. 제세동은 심장에 강력한 전기 충격을 줘 심장박동이 회복되도록 하는 응급처치다. 이후 심장 박동이 돌아온 환자는 병원으로 이송돼 의료진의 전문 소생 치료를 받았고, 2주 뒤 완전 회복돼 일상생활로 복귀했다.

순천향의대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임훈 교수는 23일 “돌연사가 발생했을 때 이처럼 현장 목격자가 빠른 시간 안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환자의 생존율을 2∼3배까지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의료 선진국에선 국민 대다수가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고 돌연사가 발생한 사람의 20∼50%가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돌연사 환자의 50% 이상이 가족 또는 동료에 의해 목격되지만 이들에 의한 심폐소생술 시도율은 1∼2%에 불과하다(2007년 대한심폐소생협회 조사). 이런 탓에 국내 돌연사 환자의 생존율은 2∼5% 정도로, 의료 선진국(7∼15%)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최근 119 구급대를 통해 병원으로 이송된 국내 전체 돌연사 환자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생존해 병원에서 퇴원하는 경우는 전체의 2.4%이며, 이 중 뇌 손상이 거의 없이 생존해 퇴원하는 경우는 0.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대한심폐소생협회는 이 같은 목격자 심폐소생술의 시행율을 높이기 위해 대폭 간소화된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공개했다. 2006년 처음 발표된 ‘심폐소생술 지침’이 목격자로 하여금 너무 어렵게 느끼게 해 시도 자체를 주저하게 만들고, 가장 중요한 단계인 ‘첫 가슴 압박’까지의 시간이 지체되도록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국내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들로 구성된 심폐소생협회는 국제심폐소생협력기구(ILCOR)가 5년마다 개정해 발표하는 국제 지침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바꿔 국내 지침으로 통용하고 있다.

변화된 내용 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심폐소생술의 시행 순서다. 기존 지침에서는 돌연사 환자 발생시 먼저 반응(의식 여부)을 확인하고 119구조 신고를 한 뒤 ‘기도 확보(Airway) 및 호흡 확인→인공호흡 2회 시행(Breathing)→가슴압박 30회 시행(Circulation)’으로 진행돼 일명 ‘A→B→C’로 불렸지만 이번에 개정된 지침에서는 순서가 ‘C→A→B’로 바뀌었다. 가슴 압박을 인공호흡보다 먼저 시작하자는 것.

심장 정지 확인 과정에서 시행됐던 ‘보고-듣고-느끼고’의 호흡 확인과 2회의 초기 인공호흡 과정을 과감히 삭제했다. 환자의 호흡 유무에 대한 판단은 의식 확인 과정에서 함께 시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송근정 교수는 “인공호흡을 주저하다가 심폐소생술을 늦게 하거나 시작하지 못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성인 심정지 환자의 경우 가슴 압박의 깊이는 기존 4∼5㎝에서 5∼6㎝로 더 깊어졌고, 압박 속도도 분당 100회에서 분당 100∼120회로 빨라졌다. 가슴 압박의 위치는 양쪽 젖꼭지 사이 가슴 정중앙이며 가슴 압박과 인공호흡 비율은 30대 2로 유지됐다.

목격자가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지 않았거나 인공호흡을 꺼리는 경우에는 ‘가슴 압박만 시행하는 심폐소생술’이 권장된다. 임훈 교수는 “심폐소생술을 하는 중에는 전문 구조자조차 환자의 반응 확인, 기도 확보 등을 수행하기 위해 가슴압박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가슴 압박 중단은 환자 생존과 직결된다”면서 “때문에 아예 인공호흡을 생략하거나 호흡수를 줄이는 ‘최소 중단 심폐소생술’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최근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