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여가수는 없다… 해체된 일상만 있을뿐
입력 2011-01-23 16:33
부조리극 ‘대머리 여가수’
프랑스 출신의 극작가 에우제네 이오네스코의 첫 번째 희곡인 ‘대머리 여가수’는 부조리극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부조리극은 인간이 가진 문제들이 무질서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전통적인 연극기법 대신 반(反)연극 형식을 통해 보여준다. 보통 연극이 서사구조를 갖추고 기승전결이 뚜렷하다면 부조리극에서는 이런 연극적인 기법이 모두 해체된다. 인물의 대화는 앞뒤가 안 맞고 행동은 설명이 안 된다. 무대에서 배우들이 하는 행동과 대사는 의미가 없다.
악어컴퍼니가 ‘무대가 좋다’ 여섯 번째 시리즈로 선보이고 있는 ‘대머리 여가수’는 부조리극의 형식에 충실하다. 무대에는 두 쌍의 부부와 한 명의 가정부 그리고 소방수가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극의 제목인 대머리 여가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사실 제목이 대머리 여가수일 이유도 없다. 어차피 그런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서씨 부부는 저녁으로 감자볶음을 먹었고, 기름은 돼지기름이 좋고 루마니아식 요구르트가 좋다는 등의 두서없는 대화를 나눈다. 3년 전에 부고장을 받고 2년 전에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6개월 후에 결혼식이 있다는 식의 앞뒤가 안 맞는 대화가 이어진다. 일상은 이렇게 해체된다.
이윽고 등장하는 마씨 부부는 부부라는 사실을 잊은 채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들은 같은 지역 출신에다 같은 아파트 같은 방에서 살고 같은 아이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낯선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부부가 되는 과정이 시간의 흐름이라면 이들의 대화는 시간의 역방향이다. 시간의 해체다. 자신을 셜록 홈즈라고 소개하는 가정부는 어미를 생략하고 말을 한다. 언어의 해체다.
객석에는 당황스러움과 웃음이 혼재한다. 부조리극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다면 받아들이는 거부감은 한결 덜하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상황을 통해 삶의 부조리함을 되짚어볼 여지도 제공한다. 황당한 대화는 종종 박장대소 할 정도로 웃음도 유발한다. 하지만 기존 연극의 문법에 익숙한 관객이 웃음을 바라고 온다면 실망할 수도 있는 작품이다.
TV와 무대를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 안석환이 처음 연출을 맡았다. 그는 소방관 역으로도 출연한다. 3월 31일까지 대학로 SM아트홀에서 공연된다(02-764-8760).
김준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