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 정벌한 이준익, ‘평양성’을 공격하다

입력 2011-01-21 17:46


이준익 감독이 ‘평양성’을 들고 찾아왔다. 백제 멸망을 다룬 전작 ‘황산벌’ 이후 8년 만의 속편이다.

‘평양성’은 서기 668년 고구려 멸망이라는 대사건이 주된 배경이다. 전작의 주요 인물이었던 김유신(정진영)이 바싹 늙은 채 다시 등장했고, 고구려 쪽에서는 연개소문의 둘째아들 연남건(류승룡)이 나·당 연합군에 맞선 대표주자로 나섰다. ‘황산벌’에 등장한 ‘백제 오천 결사대’의 유일한 생존자 ‘거시기’(이문식)는 이번에 신라군 졸병으로 다시 등장했다.

구절구절 설명을 늘어놓지 않았음에도 김유신·문무왕·김인문·연개소문 및 아들 삼형제의 캐릭터가 탄탄하게 구축돼 사극을 보는 재미를 제대로 전해주고, 삼국통일 이후의 한반도 패권을 둘러싼 당의 야욕은 현대의 열강들을 연상시키는 효과마저 낳는다. 코미디를 가장해 노회한 정치놀음을 하는 당대 인물들과 단순하고 강직한 무장인 연남건이 대비되는데, 이는 연남건으로 상징되는 고구려의 이미지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동시에 패망의 원인도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문제는 병사들이 펼치는 드라마다. 이 부분을 맡은 건 이문식을 비롯한 신라군 병졸들. 패망한 백제의 옛 백성들로 원치 않는 전쟁에 끌려와 선봉을 맡은 이들이다. 이문식의 연기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술술 흐르지만 ‘황산벌’을 뛰어넘는 신선함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 밤낮 고향을 그리워하며 어떻게든 내뺄 궁리로 꽉 찬 인물군상들의 이야기는 식상한 만큼이나 산만하고, 전체 이야기와 융화되지도 못한다.

코미디임을 감안해도, 일개 병졸이 대장군 김유신에게 아무렇지 않게 대드는 설정 역시 어색하다. 코미디와 드라마, 시대극의 장엄함 등 한 번에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는 과욕이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다. 수백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해 찍었다는 평양성 포위전 역시 중국과 할리우드의 대규모 전투 장면에 익숙해진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속편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건 이 영화의 미덕이다.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신라의 삼국통일은 고구려 멸망 이후 8년의 시간이 더 흐른 676년에야 완성된다. 백제의 옛 땅에까지 야욕의 손길을 뻗친 당나라를 물리치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상영 시간 내내 김유신과 당나라 장수 이적은 고구려 정복보다도 정복 이후의 수를 놓고 암투를 벌이는데, 이는 속편에 대한 강력한 복선이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